“합리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신용위험평가 기준의 객관성을 제고하고, 구조조정 채권의 공정한 가치를 선정하는 별도 기관을 운영해야 한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14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시장친화적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며 펼친 주장이다.

관대한 신용위험평가가 워크아웃 성공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만큼 세부 평가방식을 개선하고, 구조조정 채권 매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독립적 평가기관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날 세미나는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렸다.

"신용위험평가, 정량화 모델 필요하다"

구정한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비금융기업 중 한계기업은 2010년 2천400개에서 2015년 3천278개로 늘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 매출액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한계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기업 구조조정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구정한 선임연구위원은 “채권자 간 이해상충과 시장성 부채 확대가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관대한 신용위험평가 관행이 기업 구조조정 적기를 놓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채권은행들이 오랜 거래관계를 감안하고, 단기간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 탓에 소극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채무감면이라는 효과에 비해 ‘부실기업’이라는 낙인효과에 대한 부담이 커서 신용위험평가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신용위험평가의 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 배경이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 형태 다변화로 위험에 대한 평가 강화를 위해 세부 평가시 정성적 평가에 의존하던 것을 정성·정량 평가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원이 은행별 신용위험평가 모델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정량화 기본모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신용위험평가 담당자가 엄격한 평가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면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인센티브로 기업 살리기 유도"

구 선임연구위원은 "워크아웃 지속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채권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은 약정 체결 후 3년이 경과하면 주채권은행이 워크아웃 지속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다. 전제는 구조조정 채권에 대한 공정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그는 “매각 방법과 절차적 투명성을 위해 공개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하되, 수의계약에서 매수자·매도자 간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독립적 평가기관에서 공정가치를 산정해야 한다”며 “빈번하게 구조조정 채권 가치를 과대·과소 평가하는 회계법인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이 기업 회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채권은행의 추가자금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당국이 '손실 유발기업'과의 거래재개를 금지하는 은행 내부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 채권 매각 후 사모펀드를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은 은행의 한도성 여신 공급을 허용하고, 신규자금을 공급한 채권은행에 충당금 부담을 낮춰 주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기업 구조조정의 본질이 옥석 가리기인 만큼 엄격한 신용위험평가는 구조조정의 시작이자 성공을 위한 필수요건"이라며 "자본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할 경우 소극적인 채무조정을 넘어 적극적인 신규자금 투입이 이뤄져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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