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이달 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 대회였다. 노조뿐 아니라 농민운동과 빈민운동, 또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변혁 정치세력이 결과를 예의주시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치전략 때문이었다.

대통령선거에 민중진영 단일후보를 내자는 대선 방침, 내년 지자체 선거까지 진보·변혁 정치진영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자는 당 방침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끼칠 거고, 정의당·노동당·변혁당·민중연합당·민중의꿈 등으로 분리된 진보정치세력의 향배에 영향을 끼치는 안건이었다.

대의원대회까지 가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누구는 대선방침에 반대했고, 누구는 정당방침에 반대했다. 누구는 둘 다 반대했다. 현장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나는 통과되지 않을까 예측했다. 관건은 성원 유지라고 봤다. 최근 수년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네댓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성원이 부족하곤 했다.

그날 나는 안산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416재단을 만드는 회의를 하느라 늦게 참석했다. 곧바로 지도위원들을 찾았다. 보필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단병호 지도위원만 남아 있었고, 옆에 앉아 함께 참관했다. 원안에 대한 세 번째 수정안이 표결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수정안은 모두 부결됐다.

원안 찬반토론 뒤에 표결이 시작됐다.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인 최종진 의장은 성원을 확인했다. 재적 대의원 1천6명 중 601명이었다. 성원은 넘었다. 대의원대회가 진행되는 서울 화곡동 KBS아레나홀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의장은 원안에 찬성하는 대의원들 손들라 했다. 뜨문뜨문했다. 그래도 나는 근소하나마 50%를 넘기지 않을까 예측했다.

그러나 예측이 빗나갔다. 221명으로 35.1%, 부결이었다. 어? 이게 뭐지? 의아한 나는 주변에 물었다. 대부분 한결같았다. 예견된 결과라고 했다.

곱씹어 봤다. 그랬다. 예견된 결과였다. 35.1%는 오히려 적지 않은 숫자였다.

첫째, 가장 큰 문제는 정당방침과 대선방침을 하나로 묶어 제출한 것이었다. 정당방침을 반대하는 흐름과 대선방침을 반대하는 흐름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그것을 섞어 놓은 바람에 반대 흐름이 분위기를 탔다. 전략적으로 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둘째, 당 방침이 성급했다. 민주노동당 및 통합진보당의 1·2차 분당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의 문제와 트라우마가 정의당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또 변혁당과 노동당이 독자정당노선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내년까지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자는 것은 무리였다.

2년여 전 민주노총 전·현직 중앙집행위원들을 중심으로 진보대통합 논의를 시작할 때 대체적 생각은 2020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기서 기획 역할을 했던 내 생각도 같았다. 대선과 지자체선거를 공동으로 대응해 신뢰를 회복하고 성과를 내면, 20년 총선 때는 진보정치 대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그 노력을 공조직 체계에만 맡기면 안 되고 아래로부터의 흐름이 폭넓게 형성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지론이기도 했다. 한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현직 중집위원들 모임이 도중에 유실됐고, 대통합이 급하게 추진됐다.

셋째, 민주노총 내부 조직갈등도 한몫했다. 학교비정규직 관련 갈등만으로 버거운 상황에서, 택배 관련 조직갈등에 민중의꿈이 연관됐다는 소문이 급격히 현장에 돌았다. 민중의꿈은 정치전략에 동의하며 원안 통과에 매달렸다. 그것이 역으로 반대 분위기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됐다. 정치방침은 노선과 감정이 걸린 사안이라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되레 악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정치전략은 부결됐다. 특단의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민주노총은 정당방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남았다. 3월7일 다시 소집한 임시대의원대회다. 정치전략을 다루던 지난 대회가 2017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결의하기 전에, 또 유회됐다. 유회되고 나서 현장 분위기는 안 좋다. 찬성한 쪽이든 반대한 쪽이든 중간이든, 이래저래 화가 나 있다. 맥도 풀려 있다.

다 좋다. 서로에게 어떤 비난을 하고 어떤 대안을 주문하든, 우선은 3월7일 대의원대회를 성사시켜 놓고 보자. 그동안 민주노총 역사를 돌아보면 서로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치열하게 노선 갈등을 하면서도 모두가 지킨 하나의 불문율이 있었다. 1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은 반드시 통과시켰다. 그것을 볼모로 잡거나 통과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 의도적으로 불참하거나 해태하는 세력이 있다면,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민주노총을 지금보다 더 망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3월7일 대의원대회, 기필코 성사시켜야 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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