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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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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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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서울에 와서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지방 출신 후배가 말했다. 무엇이냐고 묻자 '출근시간에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뛰어가는 것'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맛있는 식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출근길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지각자들은 아닐 터이고, 이른 시간이든 늦은 시간이든 많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내리면 일단 뛰기 시작한다.

일상 생활속에서도 이러한 바쁨은 자주 만날 수 있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가 나오기 전에 종이컵을 잡고, 식당에서는 '빨리 되는 것'을 찾기도 한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출발하지 않았을 때 경적을 울리는 시간이 미국은 1초가 지나서이고, 일본은 0.5초인데, 우리나라는 몇 초일까라는 근거 없는 농담도 있다. 정답은? 노란불이 켜졌을 때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안녕하세요"이고 그 다음이 "빨리빨리"라는 우스갯소리가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수많은 빨리빨리 문화가 노동자 생명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설 특별소통기간'에 배달 중이던 집배원이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에도 토요택배에 나선 집배원 노동자가 돌연사했으며, 최근 1년간 9명이나 근무 중 사망했다고 한다. '30분 내 배달약속'을 지키려다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피자배달 아르바이트생 사고 이후 사라졌던 '배달제'가 여전히 시행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집배원 노동자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놓여져 있다.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 월 평균 노동시간 240시간,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888시간이다. 일반 노동자보다 매주 12시간, 매년 621시간씩 더 일을 한다. 얼마 전 <매일노동뉴스>의 집배원 동행 취재기사에서 한 집배원은 “아침에 각자 구역으로 흩어질 때 반농담, 반진담으로 오늘 꼭 살아서 보자고 팀원들과 얘기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데 정작 우정사업본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장기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며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 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촛불로 밝혀진 광장의 목소리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오래된 폐단을 청산해야 한다.

적폐는 제도를 바꿈으로써 씻어 낼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바꿔야 할 것도 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노동, 예컨대 밤늦은 시간이라도 당일배송을 위해 찾아오는 택배 노동자와 배달·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혹시라도 우리는 나의 작은 편의와 ‘죽음과 맞닿은 노동’을 맞교환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파업 노동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한마디. 이제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아, 물론 "빨리빨리"가 절대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곳도 있다. 지난 두 달 ‘염병하는’ 꼴들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는 가능한 빨리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 봄이 오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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