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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단상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4차 산업, 10년 뒤 새 일자리 58만개 만든다"(문화일보 2017년 2월2일).

"4차 산업혁명 좋기만 할까 청년취업난 더 커질 수도"(국민일보 2017년 2월15일).


만만치 않은 탄핵정국에서도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가 점점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과 일자리에 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전문가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은 그나마 있던 일자리를 한꺼번에 앗아 가는 쓰나미 같은 존재일까. 그도 그럴 것이 절대 다수의 미래전문가들은 고작 5년 안에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 할 것이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는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롭게 등장할 직종은 취업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비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을 계산해 보면 향후 20년 내 관리직 등 57%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전망이다. 향후 10년 안에 노동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일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울한 영향을 예고하는 책들도 쏟아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리처드 서스킨드, 대니얼 서스킨드)는 의사·변호사·회계사·경영컨설턴드·기자·교육자 등 이른바 현세대 전문직군 상당수가 불과 10여년 내(2025년)에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로 대체돼 사라질 운명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다행히 우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산업기술진흥원·산업연구원이 한 예측에 따르면 12대 신산업 인력 수요를 추산한 결과 AR·VR산업, 친환경 선박·드론·미래차 등에서 현재보다 최대 11.5%의 일자리 증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미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신기술·신직업군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디 4차 산업혁명이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물론 기도만으로 희망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쓰나미일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둔한 머리로 긴 고민 끝에, 필자는 과감히 희망론에 한 표를 던진다. 비관론이 주장하는 논거에는 적지 않은 논리적 부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비관론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 일자리 시장 구성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절대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바로 노동이 만들어 낼 전체 부(富)의 총량 증감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 이력과 처한 위치를 알고 나선 “아예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확신하건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되면 노동이 만들어 내는 전체 부는 분명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단순한 접근이지만, 과거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같은 가치의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혹여 “그렇게 생산한 물건을 소비할 시장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문에는 명료한 답이 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속도>(리처드 돕스 외 2인)에서는 2025년이 되면 60억 세계인구의 절반이 역사상 처음으로 소비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30년에는 연소득 2만달러 이상 인구가 무려 6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본적이 없는 차고 넘치는 소비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분배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커진 부를 누가 가질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지난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주기마다 반드시 산업에서의 혁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혁명이 반드시 모든 인류와 각 사회에게 좋았던 것도 아니다. 멀리 2차 산업혁명부터 가까운 3차 산업혁명에서도 매번 승자와 패자가 있지 않았던가.

원인이 뭘까. 답은 증가한 부의 공정한 분배에 달려 있었다. 부의 양과 질을 공정하게 분배한 사회는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퇴보했다. 3차 산업혁명(정보화 혁명)의 선두를 자처했던 우리나라는 분배에 실패한 예에 속하리라. 지난 20년 동안 확대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그 방증이다. 저성장 늪에 빠졌다고 늘 엄살이지만 같은 기간 국가 전체 부가 획기적으로 커졌다는 사실은 통계가 말해 준다. 분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의 난제를 만든 것이다.

지난날처럼 그저 비관론의 장단에 맞출 일이 아니다. 요즘 비관론은 대부분 자본측에서 나온다. 이제 노동자도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어떠한 방법으로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준비다. 그렇지 않으면 또 실패한다. 참고로 2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를 살았던 존 스튜어트 밀은 “기계는 감옥 같은 곳에 갇혀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늘렸다. (그러나) 더 많은 제조업자들이 부를 축적하게 해 줬다”고 인류 최대 혁명을 혹평했다. 200년 전과 현재는 절대로 다르지 않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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