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 13. 선고 2016가합538467 판결

1. 사건의 경과

인천성모병원 간호사로서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의 지부장이었던 원고는 이 사건 병원의 운영방식을 비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2013년 11월 병원과의 단체교섭이 결렬된 후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고 나서, 2015년 4월에는 인터넷신문에 병원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린 것을 계기로 원고에 대한 괴롭힘이 자행됐다.

그 방식은 중간관리자들을 중심으로 한 병원 직원들이 원고의 근무 개시 무렵, 점심시간 무렵 또는 퇴근시간 무렵이라는 동일한 시간대에 2~6명씩 함께 원고의 근무장소에 찾아와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방문 횟수는 10여차례에 달했다. 사측 교섭위원이 비공식적으로 원고를 찾아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사항에 항의하고 원고 개인을 비난하기도 했고, 원고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지 밥그릇만 챙긴다"는 등의 모욕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원고는 방문한 직원들에게 노동조합과 관련한 일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이 사건 병원의 인사노무부장에게는 병원 차원의 문제 해결을 요청했으나, 항의방문은 계속됐다. 원고는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2015년 4월 출근 도중 실신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인천성모병원 경영진은 노조의 투쟁에 대응한다며 2015년 7월 원고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이 사건 병원의 직원·환자·보호자들에게 배포했다. 병원 앞에는 노조 활동을 하는 원고를 ‘일하기 싫은 자’로 지칭하는 표현이 담긴 실외 배너를 설치했다. 2015년 11월에는 병원에서 발간하는 월간 사외보에 원고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원고는 집단 항의방문 방식의 괴롭힘과 유인물, 실외 배너, 사외보를 통한 명예훼손·모욕에 관해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병원장·인사노무부장과 항의방문에 참여한 직원을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 집단 괴롭힘에 관한 법원의 판단

법원은 집단 항의방문을 통한 괴롭힘에 관해 피고들의 불법행위책임을 모두 인정했다. 직접 항의방문을 실행한 직원 및 인사노무부장에 대해서는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병원장과 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에 대해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 집단 항의방문에 관해 원고는 불법적인 집단 괴롭힘으로, 피고는 자연스러운 대화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관해 법원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있고 그 사업장의 구성원들 사이에 위와 같은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의견이 달라 반목하게 된 경우라도, 상대방을 설득하는 행위,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자기 견해의 정당성을 취득하려는 행위, 나아가 갈등의 과정에서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제재조치는 관련 법령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고, 설령 법령이 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를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부득이하게 비공식적인 대화 내지 설득작업이 필요한 경우라도 그와 같은 일은 사회적 상당성을 인정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어 “직장 내에서 근로관계에 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진 동료를 만나 자기의 견해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거나 상대방의 견해가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대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라도 상대방이 그러한 비공식적 대화 또는 사적인 대화를 원하지 않고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의 공식적인 절차나 방식에 따라 대화가 이루어질 것을 원한다면 그러한 대화를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집단 방문에 의한 대화 강요가 사회적 상당성에 반해 불법행위가 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 집단 항의방문에 관해서는 병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고, 노사갈등에 관한 비공식적 대화를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항의성 발언을 듣고 있기를 강요한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상당할 수 없으며, 그 발언 태도 등이 강경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집단 방문이 원고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반복해 상당한 기간 동안 이뤄진 것 자체로도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그 위법성을 인정했다.

설령 이 사건 항의방문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는 행위이므로 공동불법행위가 됨은 변함이 없고, 인사노무부장은 항의방문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것이기 때문에 방조자로서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진다고 봤다.

다만 원고가 지부장으로서 공인의 지위에 있으므로 이 사건 병원의 일반 직원과 달리 다수의 비판 의견을 청취하는 것에 대한 수인한도를 높게 봐야 하는 점, 몇몇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강압적이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는 않은 점 등을 들어 기왕치료비 손해의 70%로 손해배상액을 제한했고, 위자료도 마찬가지 사정을 들어 그 액수를 산정했다.


3. 유인물 등을 통한 명예훼손·모욕에 관한 법원의 판단

유인물 배포행위에 관해서는 그 실질적인 내용이 노조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이고 이는 이 사건 병원 내에서 공적 관심사안이며 원고는 공적인 존재라는 점, 적시된 사실관계 중 명백히 허위인 것은 없고 평가와 해석의 문제라는 점 등을 들어 그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실외 배너 설치와 사외보 발간행위에 관해서는 원고와 노조가 주장하는 사실관계에 관해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 개인을 비난하면서 그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며 그 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한편 명예훼복에 적당한 처분으로 명예훼손·모욕을 인정하는 판결이 확정됐음을 병원 내에 공고해 줄 것을 청구했으나, 적시된 사실관계 중 명백히 허위의 사실관계에 근거한 내용은 없어 진실한 사실관계를 알리는 것이 원고의 명예훼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그 청구를 기각했다.


4. 판결의 의미와 한계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은 폭행·모욕 같이 기존에 불법행위의 한 유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화’라는 그 방법 자체로는 위법성이 없는 것 같은 행위를 통해 이뤄지기도 한다. 대화를 가장하고 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실상 강압이고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법률적으로는 이를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노조 활동가 등 사업주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한 자에게 가해지는 보복적인 괴롭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업주의 지배하에 있는 직원들을 동원해 피해자에게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대화 요구만으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하여 이를 호소할 다른 마땅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판결은, 개인적인 대화나 설득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인격침해적인 직장 괴롭힘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용인돼서는 안 될 불법행위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에 대한 방문자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원고에게 대화를 청하는 방식으로 집단 방문을 했으며 특별히 강압적이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대화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상당성을 인정받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아 대화를 가장한 괴롭힘을 불법행위로 판단했다. 특히 노사갈등에 관해 공식적인 절차나 방식에 따라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대화를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항의성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불법행위로 명시했다. 부당노동행위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판단이 주는 의미가 크겠다.

한편 이 사건에서는 여러 간접사실을 통해 상부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집단 괴롭힘이 행해졌다는 것이 인정됐지만,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객관적 관련공동성 있는 행위로 공동불법행위가 된다고 봤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용자의 조직적 지시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직장 괴롭힘의 불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사노무부장은 괴롭힘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방조했다고 판단했는데,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용자에게 괴롭힘 방지 의무가 있다는 점을 전제했다고 볼 수 있는 판단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원고는 노조 지부장으로서 수인한도가 높다고 보아 책임범위를 상당히 제한해 인정했는데, 피해 노동자가 실제 겪어 왔던 고통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되지 않은 판단으로 보인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노조 지부장에 대해 인격 모독적인 괴롭힘이 이뤄졌다는 점은 책임을 가중하는 요소로 봤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책임을 제한하는 사정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노조 지부장에 대한 인격적인 비난이 이뤄졌음에도 일부 표현물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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