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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어디까지 가 봤니?송예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 송예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서울의 명동은 평일 낮에도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대형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은 캐리어나 배낭을 메고 한 손에 쇼핑백을 든 채 거대한 쇼핑몰 같은 명동의 화려한 거리를 만끽한다. 일상을 탈출한 관광객들에게서 피로와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분주함에 쫓기지도 않고 고된 노동도 없다. 여유로운 외국인 관광객들은 세종호텔 앞에서 6년째 투쟁 중인 노동조합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나칠 뿐이다.

세종호텔은 전체 노동자 298명 중 296명이 정규직인 고용이 안정적인 호텔이었다. 세종호텔노조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계비리와 부정으로 물러났던 주명건 전 대양학원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세종호텔노조의 일상은 파괴됐다.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고 세종호텔은 친사측 노조를 설립했다. 회사는 복수노조 설립을 이유로 이미 단체교섭 중이었던 세종호텔노조와의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세종호텔노조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외주용역화 중단" "고용안정협약 준수" 같은 요구사항은 휴지 조각처럼 버려졌고, 1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단체협약마저 세종호텔에 의해 묵살됐다. 그사이 회사의 협박과 회유로 200명이 넘었던 조합원은 12명이 됐고, 정규직은 130명으로 줄었다.

회사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는 상식 이하의 전보명령이 떨어졌다. 20년 경력의 주방장은 하루아침에 주방보조로 강등됐고, 사무직 조합원은 룸메이드가 돼 하루에 15개의 객실을 청소해야 했다.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의 일방적인 전보명령은 사용자의 인사권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됐고,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정부의 노동개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몸소 체험했다.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 확대, 쉬운 해고로 이어지는 노동조건 후퇴는 세종호텔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노동자들의 연대를 단절시키고 경쟁으로 내몰았다. 반발하는 노동자는 저성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라졌고, 앞장서 싸웠던 노동조합은 거리로 내몰려 관광객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다.

거대한 호텔 뒤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외주화와 용역으로 대체되고, 연봉 삭감과 정리해고 등으로 사라졌다. 좀 더 싼 임금으로 쉽게 쓰고 버려질 수 있는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호텔의 화려함에 가려진 채 세종호텔의 민주노조 탄압은 6년째 진행 중이다.

얼마 전 50주년을 맞이한 세종호텔은 기념하듯 전 직원에게 성과연봉제를 선물했다. 하루에도 15개씩 객실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저성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여야 한다. 관광객 2천만 시대. 호텔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림자마저 쉴 틈 없이 분주하다.

우리는 항상 여행을 꿈꾼다.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 낯선 풍경이 가득한 여행지에서 고된 노동과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시야를 넓히고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익숙한 것마저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여행 속에서 그 특별함을 위해 보이지 않게 바삐 움직이고 있을 호텔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우리는 알 수 있었을까. 여기 화려함을 간직한 명동 한복판에 누구보다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공동체 정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세종호텔노조가 있었음을.

다시 호텔 앞. 관광객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화려한 명동과 세종호텔,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낯선 표정으로 호텔 앞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언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발견하고 싶다면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저녁 명동으로 여행을 떠나자.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해 고단했던 투쟁을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희망으로 2월23일 호텔 앞에서 다시 투쟁의 촛불을 들자.

송예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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