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맞불집회가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 촛불의 기세가 중요했다. 박근혜 일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대한 지연과 방해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그걸 가능케 했던 촛불집회는 지난 몇 주째 규모가 다소 줄고 있었다. 대통령 박근혜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토록 했고,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특검에서 수사토록 했으니 촛불집회는 조기 탄핵, 공범자 재벌 처벌 등을 헌법재판소와 특검에 촉구해 왔다. 처음 촛불집회는 대통령 박근혜를 퇴진시키겠다는 결의로 전개되다가 헌법재판소가 신속히 탄핵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지난 2월11일 15차 촛불집회가 있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광장과 전국 주요 도시 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 퇴진을 위한 국민행동이 있었다. 이날은 80만명으로 되살아났다. 전날부터 특검 사무실, 삼성본사, 법원, 국회를 거쳐 청와대로 1박2일 대행진에 참석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박근혜·재벌총수를 감옥으로!’ 1박2일 대행진 투쟁에는 삼성전자서비스·현대기아차·쌍용차·희망연대노조·기륭전자·유성기업·콜트콜텍 등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별검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서 "한국 사회 비리와 불평등을 파헤치고 있는 특검을 시작으로 불평등과 비리, 특권의 상징인 삼성, 선출되지 않은 불의한 법원, 촛불민심 외면하는 국회를 거쳐 청와대로 행진하겠다"고 알렸다. 이들은 재벌총수 구속 처벌과 임시국회에서 정리해고와 파견법 폐기, 최저임금 1만원 등 10대 노동관련법 처리를 촉구하며 행진했다.

2. 오늘 촛불집회는 권력과의 투쟁이다. 대통령 박근혜와 그 일당인 권력을 심판하기 위한 투쟁이다. ‘박근혜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라는 촛불집회의 주최단체의 이름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권력에 맞선 국민의 투쟁이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검찰과 법원이라는 국가기관을 통해 대통령 박근혜 일당을 심판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이 나라의 헌법과 법률은 정하고 있지만, 국민은 직접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행동했다. 광장이 국민을 '대표자를 선출하는 자'에서 '직접 행동하는 자'로 세웠다. 거기서 노동자가 다수였다. 촛불집회는 몇 년 전부터 민주노총이 주도해 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이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의 촛불광장도 노동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광장에서 투쟁은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이고 거기서 노동자는 국민으로 행동하는 자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나라의 광장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최고권력 대통령 박근혜에 맞서는 국민의 투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촛불집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국가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대한민국 기본질서를 바로잡겠다고 국민은 촛불시민이 돼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쳐 왔다. 촛불집회를 끌고 가는 것은 이것이다. 이걸 빼고서는 더는 촛불집회가 이 나라 광장에서 거대한 규모로 타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걸로 보자면 이 나라 광장은 노동자의 차지는 아니다. 아무리 다수고, 아무리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고 해도 지금 이 나라의 촛불광장은 노동자의 차지는 아니다. 주권자 국민의 직접행동이 위대하다. 그래서 촛불집회가 위대하다고 평가하더라도 그건 노동자투쟁으로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의제 국민주권이 아닌 직접제 인민주권의 실현이라고 촛불집회를 위대한 국민행동이라고 말해도 노동자행동으로서는 아닌 것이다.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 심판대에 세운 것이다. 그래서 대표자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이 해낸 것이라며 새로운 국민주권의 세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 해도 노동자이기에 새로운 주권주의와 민주주의여야 했다고 이 나라 광장은 말하지 않았다.

3. 노동자가 사용자 자본과의 투쟁을 떠나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할 순 없다. 권력에 맞선 광장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하려고 해도 자본에 맞서는 권리투쟁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오늘 박근혜 퇴진을 위해 타오르고 있는 촛불의 광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용자 자본과의 투쟁은 광장에서 주권자 국민의 직접행동으로 되기에는 오늘은 너무 멀다. 오늘 촛불시민혁명의 날에 광장은 날로 뜨겁다. 하지만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행동은 제자리다. 촛불의 기세가 작업장에서 타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이 차갑게 식어 있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처럼 광장의 촛불이 작업장에서의 노동자투쟁으로 거대하게 타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없다. 이 나라에서 광장은 뜨겁지만, 작업장은 차갑다. 광장에서 주권자 국민 직접행동은 작업장에서 노동자로서 직접행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현대기아차·쌍용차·희망연대노조·기륭전자·유성기업·콜트콜텍 등 노동자들이 1박2일 대행진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들은 그동안 해당 사업장에서 사용자 자본에 맞서 노동자 권리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 등 사용자에 맞서 투쟁해 온 노조 조합원들이었다. 뭐 그렇다고 오늘 촛불광장에 노동의 깃발을 들고 나선 노동자들은 모두가 투쟁해 온 노동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장 투쟁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나는 말하고 싶은 거다. 광장은 국민의 행동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데, 작업장은 노동자의 행동으로 타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의 날이 노동자의 날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4. 지난해 10월 말부터 타올랐던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심판에 몰아넣고, 그 일당을 처벌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나라는 탄핵 이후 전개될 대통령선거에 관심이 쏠려 있다. 날마다 대선 예상후보자들의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를 기사로 보도하고,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발언과 일정을 방송하고 있다. 어찌나 요란한지 뉴스는 온통 그들의 차지다. 박근혜 퇴진은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듯이 야단법석이다. 그걸 읽고 보자면 내가 주말마다 촛불광장에 나가는 것도 그들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광화문광장에서의 촛불은 그들을 위해서 밝히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정권교체, 세대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제각각 교체하겠다는 그들의 발언을 듣자면 나도 뭔가를 교체돼야 할 듯하다. 노동자 권리타령을 하는 나도 그들의 타령으로 타령을 교체해야 할 듯하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촛불광장은 그들이 촛불을 밝힌 광장은 아니었다. 주권자 국민의 직접행동이라고 위대하다고 자부했던 촛불광장이었는데, 그 국민 말고 그들이 주인인 듯 행세하고 나섰다. 이대로면 위대하다는 국민을 교체하고서 그들 중 하나가 대권을 차지하고 위대한 국민 여러분이 승리했다는 취임사를 나는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차갑게 말하자면 그의 승리는 국민의 위대한 직접행동이 아니다. 아무리 압도적인 다수가 지지해서 당선이 됐어도 그는 국민의 위대한 직접행동을 대신하는 대표자이고 주권자 국민의 직접행동을 잠재우고 서 있는 권력이다. 그런 권력의 일이 밀려들고 있다. 위대하다는 국민행동도 졸지에 무색해져 버리고 마는 권력의 일이 사정없이 밀려들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에게도 밀어닥치고 있다. 일자리와 노동자권리를 공약하며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대통령 선거장에 몰아넣고 있다.

5. 1박2일 대행진의 노동자들은 40리 거리를 행진했다고 했다. 그들은 “박근혜만 바뀌는 세상이 아니라 평등하고 공정한 새로운 세상을 위해” 행진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철폐, 정리해고의 폐지, 노조탄압의 중지 및 처벌 등 자신의 절박한 요구를 촉구하면서 행진했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특검·법원·국회 앞에서 촛불의 요구와 함께 노동자로서 자신의 요구를 절박하게 외쳤다. 그들이 촛불광장에서 행진으로 말한 "박근혜 없는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그건 그들만이 아니라 이 나라 노동자들의 행진으로 실현해야 할 세상일 것이다. 그 행진은 작업장에서 사용자 자본에 맞서는 투쟁을 외면하고서 느닷없이 촛불광장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촛불의 시민이 그 신분이 노동자라고 해서 노동의 구호를 외치고 행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오늘 이 나라가 광장의 촛불이 꺼지지 않았음에도 대선으로 밀려만 가고 있는 것 아닐까. 2017년 2월, 이 나라 광장은 분명히 위대해도 아직 노동의 광장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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