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밤사이 내린 눈이 제법 쌓였다. 아이한테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더니 싫단다. 눈사람 만들기가 힘들다는 이유다. 아이의 기억 속에는 눈사람을 크게 만들었던 경험이 없는 탓이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처음엔 힘이 든다. 주먹만 한 크기로 눈을 뭉친 다음에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한참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기억은 여기에서 정지된 듯하다. 눈뭉치가 농구공만큼 커지면 그때부터 눈사람 만들기가 수월하다는 기억이 없는 것이다. 눈사람을 만들 때처럼 처음의 작은 변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체증하는 현상을 스노볼(snowball) 효과라고 한다. 스노볼 효과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복리(compound interest)다. 복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리(simple interest)와의 차이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임금인상도 복리와 같은 속성을 가진다. 임금인상은 전년 임금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매년 일정한 비율로 인상된다고 가정했을 때 장기근속자라면 스노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임금의 스노볼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경기변동에 따라 임금인상률이 조정되기도 하고 물가인상 요인도 작용하는 탓이다. 그래서 임금의 스노볼 효과는 크게 걱정할 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임금인상률이 물가인상률보다 높고 30년 이상 장기근속한 노동자에게는 스노볼 효과가 나타난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해 임금의 스노볼 효과가 나타난다면 임금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인상되는 문제가 일어난다. 사회적으로는 스노볼 효과가 나타나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임금의 스노볼 효과는 노동소득 재분배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체계가 스노볼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기업 노동자에게 스노볼 효과가 나타나는 원인은 근속연수와 상여금에 있다. 앞에서도 봤듯이 스노볼 효과는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장기근속자에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는 10.4년(500인 이상 사업체노동력조사 기준)이다. 조직력이 강한 자동차회사 근속연수는 20년 언저리에 있다. 임금도 매년 연공급에 의해 자동으로 인상되는 조건이라면 대기업 노동자는 스노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정기상여금은 스노볼 효과를 가속화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회사는 정기상여금제를 운영한다. 정기상여금은 정률방식으로 지급된다. 대기업일수록 지급률이 높다. 현대자동차가 750%, 쌍용자동차가 800%를 지급한다. 정률로 지급되는 만큼 기준금이 오를수록 상여금은 덩달아 올라간다. 기본급이 100만원이고 상여금이 800%라고 하자. 기본급이 110만원으로 인상되면 상여금은 880만원으로 인상된다. 기본급이 10만원 올랐는데, 총액임금은 90만원 오르게 된다. 정률방식은 기본급이 오를수록 인상 효과가 크다.

현재 구조에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스노볼 효과를 상쇄시키려면 임금인상을 멈춰야 가능한데,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임금인상 방식도 변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 방식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호봉표상의 기본급을 계속 인상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현대차 노사가 보여 줬다.

임금의 스노볼 효과를 일으키는 연공급과 정률식 정기상여금 제도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를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임금교섭이 기업별 단위로 진행되는 구조에서는 이런 문제가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노조가 이런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대차 노사가 상여금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도 계속 연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기업이라는 울타리 안만 보지 말고 산업 전체를 보는 눈으로 상여금제도를 개선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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