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입국사무소 무리한 단속에 죽고 다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정기훈 기자
 

방글라데시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샤힘 누를씨에게 2013년 10월1일은 악몽 같은 날이었다.

체류기간이 만료된 지 두 달 만에 마석가구공단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누를씨가 일하던 ㅇ업체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5명 있었다. 단속반은 “사장님 어디 계시냐”고 하더니 다짜고짜 누를씨를 검거하려고 했다.

누를씨는 검거를 피해 도망치다 승강기 2층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왼쪽 다리 근육과 신경이 크게 손상됐다.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현재 요양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고법은 사업주가 누를씨에게 평소 단속반이 올 경우 도주를 지시한 정황이 인정됐고, 도주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만큼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지난달에도 병원 수술을 받을 정도로 장애가 남았다.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 힘들 정도다. 일을 할 수 없어 요양급여와 주변 도움으로 힘겹게 낯선 땅에서 버티고 있다. 누를씨는 “단속반은 신분도 밝히지 않고 나를 잡아가려고 했다”며 “단속반이 나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장애까지 남아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비단 누를씨만의 일은 아니다. 단속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례가 허다하다. 12일 <매일노동뉴스>는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참사가 발생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법무부 단속 과정에서 사상사고를 당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례를 조사했다. 2007년 2월11일 여수 화재참사로 보호수감돼 있던 이주노동자 10명이 숨지고 17명이 중상을 당했다.

단속반 떴다 하면 추락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여수 화재참사가 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아직도 단속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단속 과정에서 숨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9명, 중상을 당한 이주노동자가 12명이다. 이주공동행동은 "알려지지 않은 사고까지 포함하면 사상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속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사고 중 추락사가 6건으로 가장 많았다. 단속을 피하다 떨어져 중상을 당한 이주노동자는 3명이었다. 2012년 11월 인도네시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는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단속을 피하려다 8미터 높이 회사 울타리에서 추락했다. A씨는 병원 치료 중 숨졌다.

같은해 강원도 지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거주하는 민박집에 합동단속반이 몰려들었다. 중국 국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B씨 등은 해안가 방향으로 도주했다. B씨는 결국 바닷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지난해 3월에는 경주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중국 국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C씨가 단속을 피하던 중 5미터 담벼락에서 떨어져 다쳤다. 이주·인권단체는 여수 화재참사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권을 존중하라고 법무부에 요구했지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다. 여수시민사회연대회의 관계자는 “여수 화재참사 이후에도 이주민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마치 사냥하듯 단속하는 행태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단속 우선? 인권보호 준칙 '뒷전'

이주공동행동은 단속 중 사고의 원인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훈령인 '출입국사범 단속 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 준칙'에 따르면 단속 전 단속계획서를 작성해 안전을 확보하고 인권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속시 출입국관리공무원임을 인식할 수 있는 복장을 착용해야 하고, 단속반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근무하는 업체의 사용자나 주거지 관계자에게 조사목적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인권보호 준칙은 긴급한 상황 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보호명령서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보호명령서를 발급받을 여유가 없을 때에는 그 사유를 알리고 긴급히 보호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지켜지지 않고 있다.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2009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건 중에는 시장을 보던 한국인 여성이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요원 2명에게 붙잡혀 부상을 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일이 있었다. 당시 단속요원은 위압적으로 여성에게 "익스큐즈미, 이미그레이션"이라며 아이디(ID)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인 여성이 당황해서 자리를 피하자 이번에는 여성을 두 팔로 안아 압박하며 강제로 연행했다. 인권위는 "미등록 외국인 단속도 적법절차와 인권보호 준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활동가는 “보호명령서를 발급받은 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단속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절차가 있는데도 사복을 입고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마구잡이 단속을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단속반에 검거된 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입는 피해 또한 단속 과정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 단속반에 검거되면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내다 본국으로 추방된다. 게다가 일정 기간 동안 재입국이 금지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검거 직전까지 일한 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태반인데, 퇴직금 수령조차 불확실해진다.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외국인보호소에 체불임금 문제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는 데다, 공인노무사 조력이 없으면 임금을 받기 어렵다”며 “본국으로 추방되면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국에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속·구금·추방 대신 벌금제 도입해야”

여수시민사회연대회의는 지난 10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여수 화재참사 10주기 추념 기자회견을 열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은 범죄자가 아닌 만큼 단속과 추방을 중단해야 한다”며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는 출입국관리법을 비롯해 외국인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적발하는 동시에 구금해 본국으로 추방하는 것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3년 고려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인권위 용역을 받아 수행한 ‘영장제도의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불법체류범은 언제나 현행범이 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조장하게 된다”며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보호가 임의동행 형태고, 직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게 아니라면 인신구속의 근거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김헌주 소장은 “단속에 적발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계고장을 주고 벌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자진출국을 유도해야 한다”며 “단속시 사업자나 관계자의 동의를 꼭 받도록 하고 단속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정해진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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