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대선후보들부터 경제학자들까지 요즘 입만 열면 하는 이야기가 '4차 산업혁명론'이다. 인공지능 발전과 디지털 경제 확장이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학계에서는 차수와 혁명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나는 4차 산업혁명보다는 ‘알파고 시대’ 정도로 현재의 기술변화를 부르고자 한다. 어쨌건 기술과 사회가 급변하고 있고, 우리 모두가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 같다.

노동운동과 관련해 최근 기술변화가 가져오는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 인공지능과 로봇의 확대는 중간층 일자리를 크게 줄인다. 인공지능은 기술이 조금만 더 발전하면 대체할 수 있는 중간기술-중간임금 일자리들을 첫 번째 타깃으로 삼는다. 중간층 일자리가 사라지며, 저숙련 일자리는 로봇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을 정도까지 임금이 더 하락할 것이고,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고숙련 일자리는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 임금이 크게 인상될 것이다. 지금도 임금격차가 세계적 문제인데, 이제 로봇을 경계로 한 노동소득 격차까지 사회적 문제로 더해진다.

국민경제에서 보면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는 구조적 수요 부족으로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가 늘면, 그 부분의 노동자 소비수요는 감소하지만 기계를 생산하기 위한 투자가 다른 수요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의한 노동대체는 사라지는 노동자 소비만큼 새로운 투자수요를 만들지 못한다. 대규모 고정자본투자가 아니라 소수의 고숙련 엔지니어가 만들어 내는 혁신이다 보니 그렇다.

둘째, 디지털 기업의 약탈성 문제. 검색이나 게임 같은 디지털 상품들은 공짜이지만, 실제 그 상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많은 돈을 번다. 네이버 검색은 공짜인데, 네이버는 다른 기업들에게서 거액의 광고료를 받는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공짜이지만,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이용하는 앱들은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우리가 공짜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해서 기존의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전과 달리 기존 산업의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있는 디지털 경제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지대(수수료라고도 부른다)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상품들은 추가 생산에 비용이 들지 않지만 지적재산권이나 네트워크 독점효과를 이용해 수입을 계속 늘릴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구글·애플·네이버 같은 디지털 경제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반면 기존 산업의 기업들은 수익률이 낮아진다. 한마디로 다른 산업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디지털 경제의 독점기업들에게 대규모로 이전된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디지털 기업들은 고용창출 효과가 매우 낮다.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수익이 늘어날수록 고용 없는 성장,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지 않는 자본소득이 극단적으로 증가한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한 빈부격차가 구글·애플 같은 정보통신기업 때문이라는 주장도 최근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확대는 노동자 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런 변화에 대한 진보정치의 가장 직관적 대응은 기본소득이다. 기술변화를 거부할 수 없는 이상 노동과 별개로 소득을 분배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주장이다. 사회의 전체 소득을 기본기금과 성과기금으로 나눠 기본기금은 시민 모두가 n분의 1로 나눠 갖고, 성과기금은 차등해서 나누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이야기될 정도로 주류적 대안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이 있다. 하나는 노동자 다수가 기술적 낙오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알파고 시대에 기본소득은 고숙련 기술자의 소득을 재분배해 알파고 밑에 있는 존중받지 못하는 다수 노동자의 생존을 돕는 체계다.

그런데 ‘지식’이나 ‘생산’에 접근하는 기존 방식을 변혁하지 못하면 결국 이 기술적 격차를 경계로 계급적 격차가 공고해진다. 부와 지식의 빈부격차가 계속 증가할 것인데, 이를 소득의 부분적 재분배만으로 완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식을 재산권으로 독점하는 현 소유제도의 급진적 변화 없이는, 알파고 시대의 빈부격차 딜레마를 풀기 어렵다. 소득재분배와 함께 부의 재분배, 소유권 제도 자체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과 소득의 분리를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기존 전통적 노조에 절대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소득을 둘러싸고 노동시장에서 투쟁력을 확보한다. 소득이 노동과 상관없으면, 노동조합도 그만큼 힘을 잃는다. 이제 노동운동은 산업적 재편으로 힘을 잃고, 여기에 진보진영의 ‘노조 없는 대안’으로 한 번 더 힘을 잃는 셈이 됐다.

한국의 노조운동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돌파하는 방식 중 하나로 '정치세력화'를 택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노조운동이 부딪힌 문제는 의회와 행정부 정치로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정치방침을 정하는 문제로 논란을 거듭하다 결국 유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실 운동에서 뚱딴지같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이 앞으로 노동자 다수의 지지를 얻는 정치방침을 만든다면 그것은 아마도 “알파고 시대의 민주노총 정치”에 관한 계획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정치공학적 계획으로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이 혼란을 수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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