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가 최근 각 지방우정청에 “장시간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달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집배원이 급증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우정본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노동자 단속에 나선 것이다.

“악랄한 사기업보다 더 나쁜 공공기관”

8일 <매일노동뉴스>가 우정본부의 ‘관행적 집배업무에 대한 개선 지시’ 공문을 입수했다. 공문은 과로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우정본부가 지방우정청에 내려보낸 일종의 행동 요령이다. 공문에는 “일찍 출근해 전일 도착한 우편물을 1차 배달하고 이후 당일 도착 우편물을 구분해 2차 배달하는 행위를 금지하라”며 “초과근무 명령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 장기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내용이 적시됐다.

집배노조는 “인력부족으로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집배원들에게 장시간 근로로 오해받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지시한 게 말이 되느냐”며 “악랄한 사기업보다 더 나쁜 공공기관”이라고 비판했다. 본부 관계자는 “물량에 따라 초과근무를 자유롭게 신청하도록 돼 있는데 초과근무도 신청하지 않고 일찍 출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우편 물량이 많지 않은데 출퇴근 편의를 위해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있어서 장시간 노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노조 관계자는 “공문 내용을 확인한 집배원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한다”며 “본부 우편집배과에서 집배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우정본부 태도는 뜨뜻미지근하다. 지난달 '워킹맘' 과로사 이후 ‘토요근무 금지’ 같은 후속 대책을 내놓은 보건복지부와 대조적이다.

우정노조 관계자는 “긴급노사협의회에서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결렬될 경우 준법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벽 출근과 늦은 밤 퇴근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본부의 탁상행정에 집배원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1월 우편집배과에 집배 개선 담당팀을 신설했다”며 “당장 피부에 와 닿을 만큼은 아니지만 집배원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부는 집배원 장시간 노동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순로(우편물) 구분기 도입 확대와 소포위탁 확대를 꼽았다.

집배 인력 중 30%가 비정규직, 계속 증가 중

우정본부의 인력 수급 대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정본부가 수급 대책으로 내놓은 소포위탁 확대는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집배 인력 가운데 30%가 기간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다.<표 참조>

위탁집배 노동자의 노동강도도 만만치 않게 높다. 지난달 말 파주지역에서는 위탁택배 업무를 하던 특수고용노동자가 배달 도중 과로사하기도 했다. 집배노조 관계자는 “위탁집배 노동자의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7월 노동자연구소는 집배원 183명의 초과근무 세부내역 5천53건을 분석한 결과 1인당 연평균 655시간을 초과근무한다고 발표했다. 집배원 1인 연평균 실노동시간 2천888시간에서 정규 노동시간 2천233시간을 뺀 결과다. 연구소는 이 수치를 근거로 집배원 23%를 당장 충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정규직 인력 충원을 주문했다.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우정본부의 집배인력 정책은 정규직 충원을 최대한 억제하고 직·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책”이라며 “위탁 인력만 늘려서는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왜곡된 고용형태만 고착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