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서울중앙지법은 민중총궐기 집회 등을 이유로 기소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대체로 수용하면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도한 면이 있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여기서 “현재의 기준”이라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매주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의 양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집회 금지구역으로 인식돼 왔던 광화문광장 이북 지역, 특히 청와대 방면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의 행진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민주총궐기 당시 경찰의 차벽설치 등이 법원으로부터 정당하다고 판단된 주요한 논거 중에 하나는 민주노총이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법원은 이제야 경찰의 집회 대응이 억압적인 차단으로만 일관됐다는 점을 일정 부분 수긍한 셈이다.

한상균 위원장 재판을 전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규정한 집회 금지통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활발해지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회 금지구역을 대폭 축소하고, 교통 소통을 이유로 한 금지통고의 근거 규정을 삭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의 의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를 다소나마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금지’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 이뤄질 수 있고,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은 광화문광장 이북을 향하는 대규모 집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에만 몰두하고 있다.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제한하면서도 그 구체적 근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의 잣대라면 서울시 모든 주요 도로는 집회 금지구역이 된다.

개정안 통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반정부적 내지 사회적 약자의 의견 표출을 금기시하고 배척하는 기득권 세력의 인식이 집시법을 통해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집회를 억제하고 차단하려는 질서 중시적 관점은 결국 백남기 농민을 죽게 만들었고, 한상균을 포함한 수많은 전과자를 양산했다.

청와대 앞 집회가 더 이상 불온시되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점이 최근 촛불집회에서 확인되고 있다. 금지통고와 경찰 차벽설치가 없었다면 2015년 민중총궐기 또한 그랬을 것이라 상상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들이 '특정 장소에서 행진이나 집회는 불가능하다'는 불행한 인식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다. 집회 참가자와 충돌을 야기하는 경찰의 대응방식은 이제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집회를 통한 민주적 공론 과정 자체는 도외시되고 헌법 정신이 집시법 위반 형사재판 속으로 쪼그라드는 저열한 사회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개정안 논의를 통해 금지통고·차벽·물대포가 없는 집회를 실현하고, 아니 더 소박하게는 시민들이 보다 자유롭고 안전하게 집회에 참가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현실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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