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4일 촛불집회는 스스로를 축하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시민들은 다음날인 5일 맞이할 촛불집회 100일을 자축했다. 권력에 복종하던 국민이 마침내 광장에서 시민으로서 박근혜 정권 심판을 이뤄 내고 있다며 자축하며 기뻐했다. 이날 14차 촛불집회는 서울 40만명, 전국 42만명이 참석했다고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밝혔다. 지난해 10월29일 3만명이 참석한 첫 촛불집회 이후 이날까지 연인원 1천160만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12월3일에는 사상 최대인 232만명이 나왔다. 광장에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온 시민의 힘은 국회가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 소추하고 박근혜-최순실 일당에 대한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통해 처벌하는 데로 몰아 왔다. 이날도 나는 정동로터리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광화문광장에 가려고 청계광장과 대한문의 맞불집회장을 지나가야 했다. 거의 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청계광장을 지나가는데 사회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나왔다고 소개를 했고,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난하는 피켓을 든 참석자들이 환호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을 겨우 비집고 지나가는데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의 재정신청에서 자신에 대한 공소제기를 결정한 서울고법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좌파’ 판사라고 비난하고는 “박영수 특검이 청와대 쳐들어갔는데 이게 말이 되나. 기소도 못하는데 압수수색 영장은 말도 안 된다”고 발언하고 있었다. 촛불에 맞서는 반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리고 100일을 맞았던 5일,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포털에서 관련 뉴스를 찾다가 대선 예상 후보자들의 지지율, 발언과 동정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을 전하고 있었다. 촛불집회 100일을 맞이하고 있는 2017년 2월 오늘, 이 나라는 광장에서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은 자축을 하고 이에 맞서 탄핵 반대의 맞불이 매주 세를 모으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이후 다가올 대선을 두고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광장은 광장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박근혜 퇴진을 두고 그 퇴진 이후의 권력을 두고서 전개되고 있다. 이대로면 박근혜 퇴진의 촛불광장은 대통령 선거운동의 촛불 없는 광장으로 흘러갈 태세로, 자천 타천의 예상 후보자들은 다투어 인재를 영입하고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노동개악 중단 등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왔던 박근혜 정권 적폐 청산 요구는 하나도 실현되지 않은 채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심판과 탄핵 이후 권력을 두고서 흘러가고 있다. 촛불로 광장에 쏟아져 나왔던 새로운 나라에 대한 꿈은 오늘 이 나라에서는 촛불집회로 실현하게 될 꿈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이대로 흘러가고 마는가. 어쩔 수 없이 대선 후보자들의 말에 우리의 꿈을 흘려보내야 하는가. 별 수 없이 나는 그들의 말을 뉴스로 읽으며 노동자권리를 생각했다.

2. 오늘 광장을 떠난 정치는 정권교체를 두고서 전개되고 있다. 집권 새누리당의 정권을 교체하는 걸 두고서 전개되고 있다. 어떤 정권교체냐를 두고서도 후보자마다 제각각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안철수…. 정권교체에 관한 그들의 색깔은 같다고 볼 수가 없는데, 그것은 직접 노동정책을 두고서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선언한 후보자들이 노동정책에서 어떻게 다른지, 어떤 후보자는 보다 자세히 발표했고 어떤 후보자는 발표조차 않고 있으니 아직은 노동정책을 두고서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지금 지지율로 보자면 문재인·안희정 등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우세다. 그런데 요즘 그들은 서로 자신이야말로 노무현의 계승자라고 내세우고 있다. 노무현의 계승자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국민의 표는 제 것이라고 여겨서인지 몰라도 그렇다. 1천만명이 넘게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들고 외쳤던 촛불광장의 나라는 노무현의 나라였단 말인가. 촛불시민혁명이라 불리는 위대했던 시민의 광장에서 꿈꿔 왔던 나라는 노무현 2기의 나라였다는 것인가. 이미 사실상 대통령 선거운동에 돌입해 버린 나라에서 나는 노무현의 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의 나라는 촛불집회장에 노조 깃발을 들고 쏟아져 나왔던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었던가.

노무현의 노동정책은 2003년 9월4일 발표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로드맵)과 그 추진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공공연하게 대공장의 고임금을 비난하며 귀족노동자라고 하더니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다. 당시 노사관계로드맵에는 파업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기존대로 유지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을 최소기준으로 지원하고 초과지원시 제재하고, 사업장 내 복수노조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며, 공익사업장의 쟁의에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이 중 일부는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통해 입법·시행했고, 일부는 이명박 정권에서 그대로 이어받아 입법·시행했다. 그래서 오늘 이 나라에서 대표적으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악법, 노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근로시간면제 제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만이 아니다. 근로기준제도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며 정리해고 등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임금피크제와 성과주의 임금 제도를 확대하는 노동관계 개혁을 추진했다. '투명 경영과 건강한 노동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동반자로 알고 협력하면서 국민경제를 위해 함께하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추구한다고 노무현 정권은 선언하고는 이런 노무현표 노동정책을 마련해 추진했다. 이것이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노동계보다 경제계가 더 세다. 향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취임사를 했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노동정책이었다. 2003년 2월에 했던 이 취임사의 말을 그해 5월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것이며 노동자가 잘 살기 위해서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돼야 한다"는 말로 대체하더니, 6월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7월 철도노조와 8월 화물연대 파업을 거치면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하고, 노사관계로드맵을 발표했던 9월 노무현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은 올해 최소한 방향을 제시하고 노사 간 합의가 안 되도 추진하겠다"며 밀어붙였다. 한마디로 노무현의 나라에서 5년은 노동자에겐 노동자권리가 향상될 거라는 기대가 무너져 가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 노무현 정권에서 입법된 비정규직법은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면서 비정규직의 나라를 만들고 말았다. 노무현에 대한 기대는 환상에 불과했다. 사용자 자본이 아닌 노동자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은 환상이었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겐 환멸로 남아야 마땅했다.

3. 광화문광장이 본격적으로 촛불광장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던 때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정책, 그중 성과연봉제, 성과해고제 중단,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비정규직 확대 반대 등의 노동자권리 관련 구호가 외쳐졌다. 촛불집회의 주요 주최자인 민주노총이 외쳐 왔던 구호였다. 자본과 그에 편드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투쟁해 온 노동운동의 오랜 구호였다. 그건 노무현에 대한 환상 없이 외치는 구호였다. 그건 노무현의 노동정책을 이어 온 이명박·박근혜의 노동정책을 저지하고 폐지하겠다는 거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을 교체한 나라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여야 한다고 외치는 노동자의 구호였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의 광장은 노동 없는 정권교체를 환상으로 만들 정도로 굳건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1천만이 넘는 촛불이 켜졌지만 아직 이 나라에서 광장은 노동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박사모 등 박근혜 일당의 반동에 박근혜 퇴진, 정권교체 촛불이 오매불망 꺼지기라도 할까 봐 노동의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촛불광장에 갇혀 있다. 그리고 촛불은 박근혜의 퇴진과 탄핵의 구호로 광장에서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토요일에 광장에서 타올랐다가 1주일 동안 꺼졌다가 다시 토요일이 돼서야 켜지는, 광장을 넘어서 평일에 작업장에서는 켜지지 못하고 있다. 촛불광장의 시민은 아직 작업장의 노동자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의 항쟁이 작업장에서 민주화운동·민주노조 투쟁으로 전개될 거라고 여겨졌지만, 오늘은 아직 아니다. 그래서 오늘 정권교체를 내세우는 후보자들이 노무현 계승자라고 하는 말이 자꾸 염려가 된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이 환멸로 전개됐던 그 시간이 다시 이 나라 노동자 앞에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직 광장의 시간은 정권교체를 넘어서 노동의 시계를 바라보며 흘러갈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세상의 시간이 흘러가도록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투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에게 환상을 환상으로 알 게 하는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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