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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목 겨누는 ‘깜깜이 취업규칙’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최근 한 노동자 부당징계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사업장의 여러 개 취업규칙 중 ‘과연 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무엇인가’였다. 취업규칙은 노동자의 인사 및 징계조치에서 그 정당성을 다투는 데 있어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당연히 노동자가 숙지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무엇인지가 쟁점이 된다는 것은 해당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해당 노동자가 취업규칙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리 만무하다. 참 께름칙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위원회는 노동자가 적용받는 취업규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함께 해당 취업규칙에 근거해 노동자가 받은 징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했다. 다행히 노동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결정이 나왔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노동자의 행위나 사실관계는 달라진 게 없는데, 내용도 모르는 취업규칙에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취업규칙은 노동자의 사업장에서 규범으로 작용하고, 노동법에서는 법원(法源)으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이 종속노동관계의 현실에 입각해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근로자의 입장을 보호·강화해 그의 기본적 생활을 보호·향상시키려는 목적의 일환으로” 취업규칙의 작성을 강제하고 법 규범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취업규칙에 대해 노동자들이 그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사용자의 취업규칙 ‘게시의무(근기법 14조)’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보이는 곳에 잘 놔두면 된다는 것이다. 엄격하지 않은 행정감독이 늘 문제가 되는 현실에서, 게시의무가 잘 이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어디에 어떻게 게시해 둘지, 열람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규율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기 사업장 어디에 비치됐는지는 고사하고 취업규칙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숱하다. 상담시 사업장 취업규칙을 볼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은 취업규칙을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결국 사용자의 책임 방기와 행정감독의 허술함 탓에 노동자들만 피해를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기간제 노동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후 처음으로 보게 된 취업규칙에서 정규직만 받는 줄 알았던 수당들을 자신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수당들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한 노동자는 공휴일에 연차휴가 사용을 늘 강요받았는데, 공휴일이 취업규칙상 휴일로 규정돼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취업규칙을 확인한 적이 없음에도 그 내용이 칼이 돼 노동자들의 목을 겨누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 노동자는 본 적도 없는 취업규칙상 비상상황 대처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 기간제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의 겸업을 했음에도 처음 보는 취업규칙상 겸업금지 규정 때문에 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취업규칙을 '영접'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노동자들은 징계 등의 처분을 받은 후에야 취업규칙을 찾게 된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취업규칙을 얻으려고 할 때 노동자들은 사업장의 견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앉은 자리에서 보고 가되 교부할 수 없다는 반응은 그래도 고상하다. 갑자기 취업규칙은 왜 보려고 하냐는 얘길 듣기 일쑤고, 징계 중이기 때문에 보여 줄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고 오기도 한다. 사용자와의 근로계약관계가 끝난 상황에서 취업규칙을 얻는 방법은 더욱 막막하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을 달라고 해서 받아 보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들은 기억도 없다. 취업규칙 게시의무가 얼마나 허울로만 존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취업규칙 교부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교부 방식을 열어 놓되, 반드시 취업규칙을 교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부의무 위반시 취업규칙 중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은 적용할 수 없도록 단서까지 마련된다면 사용자의 취업규칙 교부의무를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평소에 본 적도 없는 취업규칙이 노사 간 분쟁 해결의 핵심 키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형식이 아닌 실질을 따져 보는 것이 노동법을 적용할 때의 기본 원칙이다. 취업규칙은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담고 있는 중요한 사내 규범이기에 형식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취업규칙 내용을 실질적으로 숙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직접 노동자들에게 취업규칙을 교부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취업규칙 설명회를 의무화하는 등 취업규칙의 구속력에 걸맞은 현실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진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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