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가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월 2일자 인터넷판에 올라온 로렌 웨버의 <직접고용의 종말, The End of Employees>이 그것이다. 영어로 Employee는 종업원, 즉 특정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를 뜻한다. 기사는 구글과 월마트 같은 대기업들이 역사적으로 전례 없이 자기 사업의 상당 부분을 파견-하청-용역(temps-vendor-contractor, 이른바 TVC)에 넘김에 따라 직접고용 노동자가 사라지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암울하게 그렸다. 이전의 아웃소싱이 의류공장의 중국 이전이나 콜센터의 인도 이전 같은 노동집약적인 전통산업 혹은 단순서비스 업종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은 거의 모든 산업과 업종에서 아웃소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라면 세계적으로 첨단을 달리는 한국 상황에선 새삼스러울 것 없는 분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세대 산업으로 구글이 심혈을 기울이는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거나 관련 법률문제를 검토하고 마케팅 자료를 관리하는 노동자가 7만명인데, 이들 모두가 파견-하청-용역 업체에 소속돼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TVC)라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기사가 인용한 카츠 하버드대 교수와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미국 노동자의 16%가 간접고용 형태로 일한다. 개인도급(특수고용)이 가장 많은 8%를 차지했고, 다음이 각각 2% 안팎의 호출·파견·전속용역·비전속용역 순이었다. 전속용역은 하나의 원청기업에 간접고용돼 일하는 형태를 말하고, 비전속용역은 여러 기업에 동시에 간접고용돼 일하는 것을 뜻한다.

정책과 학문의 관점에서,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접근하는 이분법적 방법론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를 보인 지 오래다.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으로 나눠 노동자 고용을 바라보는 시각도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충분치 않다.

오래전부터 노동세계(World of Work)를 공부하는 이들은 고용(employment)을 넘어서는 고용가능성(employ-ability) 개념에 주목했다. "특정기업 혹은 고용주와의 관계에 매인 고용"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산업 혹은 사회와의 관계를 통한 고용성(employed-ness)을 중시하는 관점을 개척해 온 것이다. 전자의 관계가 매임(tied)이라면, 후자의 관계는 연결(connected) 혹은 접근(access)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은 노동자의 미래는 끝났다는 묵시론적인 책이 아니다. 사실은 노동해방, 즉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예측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행은 연결과 접근에 기반을 둔 일자리가 확대되는 이행기를 거치게 된다. 리프킨은 이를 <접근의 시대, The Age of Access>라고 명명했다(우리나라에서는 ‘소유의 종말’이란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책이 나왔다). “글로벌 네트워크에 의해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과의 연결성이 극대화하면서 근대적인 소유 개념을 공유라는 개념으로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은 무조건적인 정규직화가 아니다. 또한 간접고용 문제의 해법도 무차별적인 직접고용이 아니다. "정규직을 써야 하는 자리에는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을 써야 하는 자리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도식도 점차 낡은 답안이 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는 경제체제와 산업구조, 생산방식은 노동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을 노동조합에 요구한다. 노동세계와 고용구조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이분법에 머무른다면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사용자가 국회의장이니까 청와대 청소노동자들의 사용자는 대통령이냐"는 출구 없는 미로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론 대자본과 공공부문에 속한 비정규직이 민간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규직보다 낫다는 실천적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비정규직 전체를 포괄하는 운동으로 성장하지 못한 노동운동은 그 주체의 엄청난 헌신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정규직 운동을 하위 99%의 비정규직으로부터 고립된 상위 1% 비정규직 리그로 전락시켰는지도 모른다.

정규직화와 직접고용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해법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정규직화와 직접고용 경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기업별노조주의의 온존과 종업원 의식 강화로 이어지면서 노동조합운동의 자원과 대응력을 훼손시켜 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계급성과 연대성을 복원시킨다는 측면에서 특정 자본가가 소유한 기업에 경직적으로 종속된 종업원(employee) 시대의 종말은 노동운동에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실천적 돌파구를 열어 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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