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유센지부

일본계 물류기업인 유센로지스틱스코리아가 노조간부들을 다른 직원과 접촉할 수 없는 외딴 부서로 발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가 노조 가입범위 축소를 비롯한 노조활동에 개입하려 하면서 노사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5일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유센지부(지부장 성혁기)는 “사측이 지부 간부 5명에게 단행한 전보발령이 부당전보이자 부당노동행위라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이 최근 나왔다”며 “지부 간부들을 원직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사무실에 몰아넣고 CCTV 설치

 

유센코리아는 지난해 9월 지부 전·현직 간부 5명만 발령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대상은 현직 부지부장·사무장·대의원과 전임 집행부 부지부장·회계감사였다.

사측은 5명 중 4명을 부서원 없는 외딴 부서로 보냈다.<표 참조> 4명을 본사 사무실 한구석에 몰아넣고 이들의 자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폐쇄회로티브이(CCTV)를 설치했다. 한 명은 그나마 팀원(4명)이 있는 물류센터로 발령했다. 노조간부를 인사하려면 사전에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다.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노조간부들을 노조활동이 어려운 부서로 발령해 조합원들과 접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한곳에 모아 상시적 감시가 가능하도록 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 사례”라고 설명했다.

‘공정인사’ 조정안 수락 직후 부당전보

2003년 설립된 유센코리아에 노조가 만들어진 건 2015년 5월이다. 정규직 150여명 중 70여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지난해 4월 정기인사 때부터 노사갈등이 불거졌다. 지부는 “조합원만 이유 없이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가 많았고 대규모 전환배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부는 같은해 7월11일 서울지노위에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같은달 25일 조정이 성사됐다. 조정안에는 “향후 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가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지부는 정기인사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하는 불공정 인사를 했다는 문제제기를 사측이 수용한 결과로 봤다. 그런데 다음달부터 회사의 노조탄압이 본격화됐다. 전·현직 노조간부 5명에게 전보를 통보한 것이다. 조정안에서 공정인사를 약속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같은달 22일 성혁기 지부장이 본사 로비에서 부당전보에 항의하며 농성을 했지만 전보인사는 시행됐다. 성혁기 지부장은 “노사합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측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앞으로 어떤 합의를 한다 해도 지켜질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부서장은 사용자? 조합원 범위 논란

회사는 조합원 범위도 문제 삼았다. 지난해 8월17일 서울남부지법에 지부 조합원 7명에 대한 조합원지위 부존재확인청구 소송을 냈다. 부서장은 사용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조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게 소송을 제기한 주요 근거다.

지부는 규약에서 조합원 범위를 회사에 소속돼 일하거나 관련 업무를 하는 모든 노동자로 규정했다. 지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도 조합원 범위는 노조 규약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부 관계자는 "명칭만 부서장일 뿐 실제 관리자 권한도 없으니 노조법상 근로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노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부서장들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부서장들과 노조를 분리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측은 지난해 10~11월 조합원 범위를 이유로 지부의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회사는 공문에서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관리자가 가입돼 있다”며 “노조가 결격사유를 해소하지 않는 한 교섭을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최근 단체협상에서 조합원 가입 범위를 축소하는 요구안을 내놓았다. 요구안은 △관리직 △인사·노무·비서 등 총무업무 담당자 △전산업무 △경리업무 담당자로 재무·회계 담당자를 열거해 조합 가입 범위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단협에는 노조 가입 범위는 노동관련법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파업 대비 노조 파괴 시나리오 가동하나

지부는 지난해 10월 서울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지부 조합원 5명에 대한 전보처분과 CCTV 설치를 통한 감시행위를 회사의 노조운영 지배·개입 행위로 보고 원직 복귀와 CCTV 철거·재발방지 약속공문 게시를 요구했다.

최근 서울지노위는 전보처분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CCTV 설치와 관련한 부분은 부당노동행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부는 “일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노조의 자주권 보호 원칙을 지킨 판정”이라며 “판정문이 나오면 사측은 즉시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부는 지난해 8월22일 시작한 로비 농성을 이날 현재 168일째 지속하고 있다. 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정기인사부터 노조가 파업을 하면 타격이 큰 항공·해운부서를 중심으로 조합원 비율을 줄였다”며 “핵심 조합원을 직원들과 분리하는 조치가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초 인천공항 주요 업무를 비조합원에게 인계하도록 하고 해운부서 주요 고객사 관리를 비조합원 위주로 배정했다. 조합원 규모를 축소하고 파업 파급력을 줄이려는 사전 인사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부는 “노조를 무시하고 일방통행한다면 노조 탄압 기업으로 불명예와 망신만 얻을 것”이라며 “악질적 노조탄압을 중단하고 노조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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