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대전지법이 철도노조·수자원공사노조·철도시설공단노조·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기술공사지부·공공연구노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지부가 각 공공기관을 상대로 낸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본안소송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성과연봉제 시행을 담은 취업규칙 효력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금융·공공부문 노조는 34곳으로, 법원은 이 중 9곳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5곳은 인용했다. 20개 기관은 아직 심리를 마치지 못했다. 판결은 엇갈렸지만 성과연봉제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는 취지에는 공감을 표해 본안소송에서 노조쪽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가처분 결정의 의미를 들었다.


‘행정독재’ 제동으로 법치주의 확립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그동안 행정부는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헌법과 노동법 위에 군림하는 '행정독재'를 했다. 법원이 행정독재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가 확립됐다고 본다. 이번 가처분 소송에서 핵심 쟁점은 채권자(노조)가 주장하는 권리가 시급히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앞서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등이 낸 가처분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은 '임금손실은 나중에라도 보전하면 된다'는 논리로, 보전해야 할 권리를 임금에만 한정해 협소하게 해석했다. 반면 대전지법은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임금 불이익뿐만 아니라 행정지침으로 인해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하고 결정해야 할 헌법적 권리인 단체교섭권이 침해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노조의 승소, 사용자의 패소를 넘어 헌법 알기를 우습게 알고 노조법을 대놓고 무시해 온 정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판결이다.



정부, 성과연봉제 강압 철회 계기 삼아야
나기수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 나기수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판결문을 읽어 봤다. 우리의 상황과 큰 차이는 없었다. 판사가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한쪽은 인용이 되고 다른 쪽은 안 된다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 대전지법은 어쨌든 회사의 성과연봉제 강행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가처분을 인용한 것이다.

기업은행지부 가처분 판결 역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가능성은 언급했지만 시급성이 떨어지는 단서가 붙었다. 가처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인데 이를 중심에 두고 판결이 내려졌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근로자 과반수 동의라는 법에서 규정하는 절차를 위반했다고 하면 그것 자체로 잘못된 것이 맞는데 그런 문제 핵심은 피해 갔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 임금의 경우 본안소송 결과에 따라 원상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평가가 시작되면 처음의 평가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평가를 본안소송 결과에 따라 원상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입장에선 돌이킬 수 없는 피해인 것이다. 그런 위험이 내포된 제도인데 단지 금전적인 긴박성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것은 잘못됐다. 항소를 준비 중이다.

대전지법의 가처분 인용을 환영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절차와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다. 본안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정부가 성과연봉제 불법 도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본안소송까지 가기 전에 자진해서 제도를 철회하길 바란다.



정치적 판단 아닌 법리적 판결 기대
나종엽 한국공항공사노조 위원장

▲ 나종엽 한국공항공사노조 위원장

한국공항공사노조가 제기한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기각됐다. 우리가 가처분을 제기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하면서 노조 동의를 받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다른 하나는 공사 노사의 단체협약에 명시된 ‘임금제도 변경시 사전에 노조와 합의’ 조항을 위반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니 이 두 가지 중 근로기준법 관련 내용만 기각사유로 열거돼 있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이 기각한 심판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여타 노조와 다른 우리 사정은 판결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따른 판결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대전지법에서는 다행히 양심 있는 법조인들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우리 노조도 즉시항고를 결정해 현재 추진 중이다. 재심 재판부는 정치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사안을 있는 그대로 법리적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노사관계는 파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제대로 판단을 해 줘야 노사 간 신의를 가질 수 있다.



정치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윤정일 철도시설공단노조 위원장

▲ 윤정일 철도시설공단노조 위원장

정부가 성과연봉제 깃발을 흔들고 공단이 이를 강행하면서 공단 노사관계는 파탄이 났다. 공단은 노조가 성과연봉제를 수용하지 않자 임금·단체교섭을 중단하고 단협을 해지했다. 공공기관 노조들과 함께 파업을 전개하자 조합원들에 대한 각종 탄압이 이어졌다. 노조 행사에 불참하라는 협박은 물론이고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지배·개입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공단은 노조활동을 압박하기 위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45건의 소송을 걸었다. 노조간부들은 거의 매일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불법천지·무법천지 행태가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셈이다.

가처분 인용은 막무가내인 공단과 싸워 온 조합원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성과연봉제를 막아 낼 수 있는 단초가 만들어졌다는 안도감이 생겼고,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성과연봉제 폐기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단은 가처분 인용이 법원의 이례적인 판단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재심 청구를 검토하고 있고, 본안소송도 준비하려 한다. "노조가 문제를 크게 키워 오히려 공단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내놓고 있다.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 성과연봉제 강행을 재고해야 한다. 국회나 정치권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사법부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대선 유력주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기고 싶다. 노동자의 권리를 불법적으로 박탈하려 한 사용주나 공공기관에 대해 엄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노동 3권을 보호하고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노동시장 문제 제대로 고민하는 계기돼야
이영우 한국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

▲ 이영우 한국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

대전지법의 가처분 인용 결정은 당연한 결과다. 판결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운운한 정부의 입장을 뒤엎었다. 본안소송에서 노조가 이기든 지든 회사는 손해 볼 게 없지만, 노조는 본안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가처분 소송에서 기각되면 손해를 입게 된 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해 온 스탠스가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노동계 입장에서는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성과연봉제는 대통령의 지시로 강행됐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물론이고 공공기관 사용자들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노조가 마냥 기뻐하기만 할 일도 아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같은 피해자인 노사가 성과연봉제 갈등을 원만히 정리해야 한다. 법정 소송으로 소모전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공공기관 노사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과 경제 발전을 위해 진짜 해야 할 일을 고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이전처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면 장시간 노동과 일자리 부족, 저출산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사정이 진심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이번 판결이 그런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