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넘 좋습니다.”

“가처분 진 곳도 있고 본안까지 저희의 진짜 싸움이 남아 있지만 (…) 정부가 기정사실화 못하게 돼서 참 좋네요.”

지난달 31일 저녁 8시 남짓한 시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성과연봉제 법률지원단 톡방(텔레그램)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대전지법이 수자원공사노조·철도노조·철도시설공단노조,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기술공사지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지부가 각각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인용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지난해부터 몇몇 법원에서 미리 선고된 관련 사건에서 매번 기각을 당한 터라 법률지원단과 해당 공공기관노조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도 관련 노조와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법률지원단도 재판부 설득을 위한 법리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성과연봉제 사건 판단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대전지법은 사법부가 지켜야 할 기본에 충실했다. 너무나 당연함에도 최근 몇몇 판결에서 크게 실망한 터라 이번 판결은 우리에게 큰 울림마저 준다.

사실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형편없는 판결문도 있었다. 사건 경위조차 확인하지 않고 사소한 줄 간격조차 갖추지 않은 두세 장짜리 조악한 판결문을 보낸 재판부도 있었다. 대리인들로서는 엄정 중립과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쟁점의 선행 판결을 따랐다”는 변명은 차마 듣고 싶지 않다. 모든 사건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에서 수행한 여러 성과연봉제 확대도입 사건에서 같은 내용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런데 선행 판결과 동일한 판단이라니…. 그런 논리라면 차라리 법관이 아니라 인공지능(AI)으로 재판을 대체하면 그만 아닌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한다(헌법 103조)”는 헌법정신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법관이다.

대전지법 판결은 성과연봉제 확대와 관련해 노사 간 분분했던 몇몇 쟁점을 충분한 논거로 자세히 판시했기 때문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짧은 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법리적인 완성도가 높다.

무엇보다 성과연봉제 확대가 조합원들의 임금액이나 임금상승률에서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사측은 줄곧 소송 회피 전술을 폈다. 성과연봉제 확대로 조합원들이 입는 불이익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설사 불이익이 있더라도 이후 정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앞선 사건에서 일부 재판부가 이러한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전지법은 사측의 회피 전술을 부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전지법은 “유불리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에게 불이익한 것으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며 “여러 법률관계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판단을 구하는 번잡한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변경된 보수규정의 유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판단한다”는 법원의 기본적 책무에 충실했다.

이른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해 근로기준법(94조1항 단서)상 노동조합 동의권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정한 단체교섭권 내지 단체협약체결권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권리로 인정했다. 또 성과연봉제 확대가 조합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노동조합이 소송 당사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개별 조합원에 비해 소송상 필요한 자료의 수집이나 재정 면에서 조직활동과 단결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법리뿐만 아니라 재판부의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좋은 판결을 받고도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깊어만 간다. 성과연봉제 문제가 사법부 판단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성과연봉제를 강행한 정부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자체로 정당성을 상실하고 껍데기만 남았다.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주장이 거짓임이 확인된 이상 정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정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훌륭한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있을 많은 재판에서도 부디 각자의 사건에서 법관의 ‘양심’을 따르는 판결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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