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민주주의를 외치고 법치주의를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일당과 그 공범자들에 의해 무너진 이 나라의 기본원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아니다. 소환에 불응하다가 체포영장에 의해서 특검에 끌려 나오면서 최순실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고, 검찰 조사에 불응하고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가 인터넷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태극기 맞불이 자유민주주의·법치를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설연휴를 며칠 앞둔 지난 25일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사무실 PC에서 동영상을 찾아 그들의 말을 들었다. 최순실은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삼족을 멸하겠다고 협박 수사를 했다고 울부짖으며 특검 수사를 비난하고서 대치동 특검 사무실 승강기에 탑승했다.

그런 최순실의 말에 “염병하네”라는 말이 몇 차례 섞여 들렸다. 보도를 보니 특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관리회사 소속 비정규직 환경미화원 임아무개씨가 최순실의 말에 열불이 나서 했다는 말이었다. 박근혜는 “촛불시위의 두 배 이상으로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법치를 지키기 위해 나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유튜브 채널의 개인인터넷방송인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를 그들은 말했다. 그저 말한 정도가 아니었다. 사력을 다해서 말했다. 그 말들을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말로 내뱉었다.

2. 박근혜와 최순실은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한 이 나라의 기본원리인 그 말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르짖고 있다. 국가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와 그 행세를 한 자가 자신들을 지켜 내기 위해서 그 말이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걸 지키라고 그걸 지켜야한다고 마치 민주주의의 투사처럼, 법의 지배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자처럼 말하고 있다. 최순실을 위한 민주주의고 박근혜를 위한 법치주의인 양 그들은 지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권력자 박근혜 일당의 전횡에 철저히 무너졌다. 그걸 되살리겠다고 국민은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명백히 이 나라에서 법치는 법 위에 군림한 박근혜 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했기에 그걸 되살리겠다고 국민은 촛불로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국회는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소추했고, 특검은 수사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일당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자신들을 살리는 말이라고 사력을 다해 부르짖고 있다.

3. 지금까지 검찰과 특검에서 조사받아 온 최순실은 검찰과 특검의 조사 앞에서 변호사 참여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왔고, 특검의 소환명령을 번번이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해 왔다. 이 나라에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피의자 인권보장 제도는 최순실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이를 철저히 이용해 왔다. 최순실처럼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수사에서 피의자권리를 보장받은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이 나라에서 힘센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피의자권리였다. 이 나라에서 힘센 권력과 재벌 정도만 누릴 수 있는 법적 호사를 누리고 있는 최순실이다. 이런 최순실의 호사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질서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직까지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숙식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불소추특권과 엄격한 탄핵절차 등 이 나라의 법치주의로 대통령으로서의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그런 그들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누구보다도 그 말이 자신들을 지켜 주는 말이란 걸 잘 알고서 하는 말이다. 그들의 추악한 작태와 범죄행위가 폭로됐을 때 국민의 분노는 이미 몇 번이고 그들을 심판하고도 남았다. 지난해 10월 말 이후 수백만으로 폭발했던 국민의 분노는 매주 박근혜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리고 그 일당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심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이런 국민의 의지를 즉각 반영하는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참 부족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헌법재판소의 탄핵제도에 기대야 하는, 보잘것없는 민주주의였다. 저 4·19의 거리는 2016년 11월 광화문광장에서는 너무 낯설게 보였다. 권력에 맞선 국민의 항쟁으로 독재권력을 끌어내리는 민주주의까지는 아니었다.

대한민국헌법은 헌법을 농단한 권력을 심판하는 제도를 두고 있었다. 4·19의 거리에서처럼 곧장 혁명의 거리로 달려가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수백만의 촛불로 심판하라고 국회와 헌법재판소·특검에 주문하며 광장에서 외쳐 왔다.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가 아니라면 벌써 촛불 시민혁명의 불길에 타 버렸을 것이다. 적어도 저 이승만처럼 살기 위해선 청와대를 버리고 이 나라에서 달아나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가 그들을 살리고 지켜 주는 것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은 그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보장한 인권을 철저히 누리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 내려는 특검에 대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국민의 촛불을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비웃고 있다.

4. 민주주의·법치주의는 권력을 위한 말이 아니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말하는 그 말은, 그러나 최순실과 박근혜 일당을 위한 말이 아니다. 권력을 위한 권력의 말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국민의 말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자를 지켜 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켜 주기 위한 말이다. 국민이 주인인 원리, 권력의 자의적 지배 ‘인치’가 아닌 법에 의한 국민에 대한 지배이고, 그건 온갖 권력에 대한 국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의해서 이 세상의 질서로 세워졌다. 그걸 쓰레기로 취급하며 짓밟은 권력자였던 그들이 자신을 위한 말로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국민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세우기 위해 그걸 농락한 독재권력을 단두대와 법정에서 심판했다. 물론 그들이라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주장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제라도 제 잘못을 알고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행동이라면 그들의 말이라도 나는 뭐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그 말은 그걸 모독했던 그들이 반성하고 행동으로써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모독했던 정도에 비례한 반성의 행동이어야 한다. 이제 권력을 잃게 되니 권력 앞에 약자인 양하며 여론에 동정을 구하고 지지자들의 맞불에 호소하기 위한 술수로써가 아니라 진정 어린 반성의 행동이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법치주의를 짓밟은 권력의 반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로 세워진 질서에 따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행위를 자백하고 그에 따른 심판을 받는 것이다. 범죄행위에 대해선 처벌을 받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그에 상응하는 법적 처분을 받으며 대통령직에 대해선 탄핵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은 권력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도 자신이 한 행위를 은폐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데 당당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일로써 행한 권력의 행위는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그 행위에 대해 법적·정치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가 짓밟았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내세워 심판받는 걸 피해선 안 된다. 오늘 이 나라에서 대통령 박근혜와 그 권력 행세자 최순실 일당의 반성은 처벌·탄핵 등으로 철저히 심판받는 일이다.

5.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분명히 오늘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을 위한 말로 사용되고 있다. 최순실의 말에 “염병하네”로 응답했던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은 최순실이 누리고 있는 피의자 인권을 누릴 수가 없다. 이 나라에서 검찰 조사에서 변호사 참여 등 변호인 조력을 받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어 국선변호사로 형사재판을 받는 국민도 많다. 사선변호사를 선임해도 검찰 조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까지 변호인 조력을 받는 경우는 드문데, 입국하기 전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해 온 최순실의 피의자인권 보장은 환경미화원 노동자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헌법 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평등권으로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선언하고, 형사소송법은 피의자로서 국민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했지만, 엄연히 피의자로서 실제로 보장된 인권은 최순실과 비정규 노동자는 다르다.

실제 보장된 것을 보자면 최순실은 있고, 비정규 노동자는 없다. 최순실이 헌법과 법이 보장한 모든 인권을 만끽하고 있다면, 비정규 노동자는 최소한 수준에서 형식적으로만 보장받고 있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이 자본의 세상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권력에 굽히고, 돈에 굴복해 왔다. 형식적으로만, 법 규정으로만 평등할 뿐이다.

만약 오늘 최순실과 대통령 박근혜 정도로 피의자로서 인권을 보장받는다면 국민은 이 나라를 인권의 공화국이라고 감격해할 것이다. 그랬다면 특검에 강제로 끌려가던 최순실의 말에 “염병하네”로 대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를 위해서는 오늘 최순실·박근혜 일당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염병할 말이라고 비난받아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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