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4일 잠실체육관에서 제26대 한국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인대회가 열렸다. 양 후보조의 치열한 각축 끝에 김주영·이성경(위원장·사무총장) 후보가 당선됐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었지만, 한국노총과 한국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조합원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는 장으로 충분했다.

특히 노동이 사라진 암울한 시기인지라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짧게는 이 정권과 그 이전 정권 5년까지 무려 10년 가까이 정책 집행자들 머리에는 노동과 노동자는 없었다. 단적으로 노동부가 간판을 내리고 그 자리에 일자리 부서가 들어서지 않았나. 노동기본권은 재벌의 잇속 앞에 내팽개쳐졌다.

그런데 촛불을 지난 오늘 현실에서 또한 노동자는 없다. 언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어떤가. 수없이 쏟아지는 공약(空約) 속에서 노동공약은 없지 않은가. 필자의 기억으로는 노동을 이해하고 노동을 중심으로 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유력 후보자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유일했다. 이른바 보수를 자임하는 자들에게서는 노동의 “노”자도 바라지도 않는다.

안타깝지만 노동자와 시민을 대변하겠다고 말해 오던 야당의 유력후보조차 노동기본권 공약은 내놓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는 오히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다운 일자리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잘 알려져 있지만 인간다운 일자리의 핵심 바탕은 바로 노동기본권이 보장된 후에나 가능하다. 과연 이러한 발언을 하는 이들이 노동자와 노동에 대해 관심이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김주영 위원장 당선자는 이런 현실을 잘 간파하고 있을 게다. 그래서인지 당선 일성으로 조직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전 조직적 역량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방법으로는 전체 조합원들에게 의사를 묻겠다고 했다. 총연맹 위원장으로서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정권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노동자 정권 이외에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깊은 공감에서 한 공약이리라. 찬성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공약 실천은 치밀해야 한다. 늦어도 상반기에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면 객관적으로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취임과 동시에 전 조합원을 상대로 노동자 정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뜻을 모아 한국노총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 선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후보자가 없는 상황에서 조직된 노동자 100만명의 단결된 지지만 있다면 그 어떤 정권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100만 조합원의 한국노총과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겠다는 공약도 했다. 비정규 노동자를 노총과 산하 각급조직이 가장 먼저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당선자가 현장에서 한 성공 경험을 노총에서도 그대로 실천한다면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릴 것이다. 이에 앞서 더 긴요한 것은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

바로 제도 개선이다. 노동현장을 황폐화시킨 타임오프와 창구단일화 제도의 개선까지는 좀 멀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자행해 온 단체협약 시정명령이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부실 감독이라도 바로잡으면 곧장 노동조합 조직률이 올라간다. 노동기본권을 물과 공기처럼 우선 순위에 두는 정부를 세우는 것이 첩경임을 당선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노총이 잘해 온 역사는 빠짐없이 성실히 이어받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 정부를 상대로 한 김동만 위원장의 끊임없는 투쟁이 광화문광장 촛불의 도화선이었다. 동토 같은 이 정권에서 최소한이나마 노동이 지켜지는 계기였다. 단바 강제노동자상 건립, 남북통일축구,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총회에서 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퍼포먼스 등 지난 임기 동안 김동만 위원장은 국내외 연대활동에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김주영 집행부의 든든한 자산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김주영 위원장의 소명은 막중하다. 시대가 그러하고, 조직노동자들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여전히 영어의 몸이다. 싸워 나가는 데 때로는 힘겨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조합원들만 보고 가겠다던 약속을 믿었으면 한다. 봄이 오면 우리사회 곳곳에 노동이 다시 봇물처럼 터지는 시대의 시작이길 희망해 본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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