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야당 대선주자들은 경쟁하듯 재벌개혁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의 몸통 중 하나가 재벌인데다, 민생위기 책임도 재벌에게 있다는 주장이 많은 까닭이다. 사실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군부정권에서도 재벌개혁은 빠지지 않는 ‘개혁 의제’였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씨의 재벌개혁론을 살펴보며, 재벌개혁의 효과와 실행 가능성을 따져 보자. 문재인씨가 재벌개혁론에서 첫 번째로 꼽는 것은 ‘지배구조 개혁과 투명한 경영구조’다. 이사회와 감사위원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소액주주와 노동자가 경영에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예상해 보면 지금 같은 불황에 이사회가 투명해진다고 해서 고용을 늘리라거나, 수익률 하락을 감당하고서라도 중소기업 납품가격을 올리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결정은 단기적으로 기업에 손해다. 장기적으로 이득이 있을 수도 있으나, 불황기에 장기 전망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단기 손해를 감수하고 성과가 불확실한 장기 이득을 위해 경영전략을 짠다는 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배임행위일 수도 있다.

주주나 종사자가 경영에 참여해도 마찬가지다. 불황에 고용을 늘리면, 기존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이 증가하고, 공정한 거래를 늘리면 주주의 배당이 감소한다. 호황기에는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지만 불황기에는 이해관계자 범위를 좁혀야 이익이 보장된다. 불황기에 ‘투명한’ 경영은 민생에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더 투명해질수록 오히려 민생과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문재인씨가 재벌개혁의 두 번째 과제로 밝힌 것은 ‘재벌의 확장력 억제’다. 금융기업을 이용한 계열사 확대를 규제(금산분리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정책이다.

그런데 금산분리 강화란 프레임 자체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이야기다. 한국의 재벌들은 1990년대까지 금융계열사를 통해 인수합병 자금을 만들며 몸집을 불렸다. 금산분리의 기본 취지는 재벌의 이런 금융기관 사금고화를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위 재벌들은 웬만한 인수합병은 자기 돈으로 다 할 수 있을 만큼 현금이 많다. 예로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화 가능한 자산은 80조원에 이른다. 차입금은 10조원에 불과하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굳이 금융회사를 이용해 몸집을 불릴 이유가 없다.

하위재벌들은 재무 조건이 안 좋아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 설사 있더라도 현재 금산분리 제도 정도면 족하다. 금산분리가 현실에 적용될 대상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처분 여부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 여부조차도 민생과 딱히 직접적 연관을 찾기 어렵다. 금산분리 강화 정책은 그야말로 헛발질이다.

문재인씨의 세 번째 재벌개혁 정책은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하청 쥐어짜기를 규제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시장의 실제 현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제조업의 경우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차 벤더는 약탈당하는 희생자라기 보다는 대기업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하위 파트너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대기업에 희생당해 문을 닫은 1차 벤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유하자면 대기업에 직접 납품을 하는 1차 벤더는 자유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먹이를 보장받는 대기업 동물원의 동물들과 비슷하다. 동물원을 나가면 자유롭긴 하겠지만 위험과 굶주림을 각오해야 한다. 사실 핵심 문제는 기술과 생산에 관한 경쟁력이란 말이다. 1차 벤더 종사자들에게는 원·하청 공정거래 효과가 별로 없고, 그 외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는 불공정거래 제도 자체가 아예 관계가 없다.

대형마트가 중소업체에 하는 각종 ‘갑질’처럼 경쟁력과 상관없이 실제 시장지배력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경우도 소송제도를 강화해 갑을 관계를 바꾸기는 어렵다. 단적으로 대형마트측이 “싫으면 말고” 하면 소송이고 뭐고 간에 스스로 판로가 없는 중소기업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소송제도가 부실해 갑을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요컨대 문재인씨의 재벌개혁 정책은 민생위기 정책이 아니다. 내 생각에 그의 재벌개혁 공약은 민생위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이라기보다는 개혁 후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장식품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정책들이 대충 기회를 보다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정책들은 시행이 되지 않아도 서민들에게는 별로 해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 서민이 직접 삶의 현장에서 만드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재벌개혁 정책이 절실하다. 민생위기 해결책으로써 재벌개혁을 우리 스스로가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