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보통신공사업법상 통신·케이블업체 도급기사 사용은 불법입니다. 업계에서 도급기사를 관행처럼 사용했다고 해서 불법이 합법이 될 수는 없어요. 유료방송 가입자 비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됐는데, 설치·수리기사들은 목숨을 걸고 일합니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도급기사 사용은 청산해야 할 적폐입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추혜선 정의당 의원(45·사진)은 통신·케이블업계의 도급기사 사용 문제를 파고들어 불법성을 밝혀낸 주인공이다.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르면 전신주 단자함에서 가입자 자택까지 케이블을 연결하는 국선인입선로 공사는 법이 정한 자격요건이 필요하다. 자본금이 1억5천만원 이상이어야 하고, 사무실과 기술자를 보유해야 한다. 개인사업자인 도급기사는 자격요건에 미달한다. 아파트와 신축건물을 제외한 건물에서 인터넷과 IPTV 설치·수리업무를 할 경우 불법이 되는 것이다.

추 의원이 처음 문제를 제기하자 업계는 반발했다. 아예 모르쇠하거나 미래창조과학부에 법 위반이 아님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미래부는 “다가구주택에 인터넷·IPTV 서비스 제공을 위한 국선을 설치하는 경우 기간통신사업자가 직접 시공하거나 정보통신사업자에게 도급해야 한다”는 해석을 최종 확정했다.

추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지 두 달여가 지난 현재 크고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미래부와 지자체는 통신·케이블업체 도급기사 규모를 이달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업계는 개선책을 내놓아야 하는 셈이다. SK브로드밴드의 경남지역 일부 센터는 도급기사를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3일 오후 국회에서 추 의원과 만나 통신·케이블업체 도급기사 문제 해법을 들었다. 추 의원은 언론노조 SBS본부 대외협력국장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낸 언론정책 전문가다.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해 현재는 당에서 대변인과 박근혜정권 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불법 키운 미래부 결자해지해야”

- 도급기사 사용이 불법이라고 처음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계기로 이 문제를 알게 됐나.

“국회에 온 뒤 과거 미방위 회의록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2014년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으로 미방위가 케이블방송 협력업체에 시정조치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 국선인입선로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법이 요구하는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문제를 검토하게 됐다. 국회 오기 전부터 설치·수리기사들을 한 식구처럼 알고 지냈다. 정의당에 입당했을 때 지지기반이 없었다. 정의당은 당원들이 투표해 비례 순번을 정했는데 그때 설치·수리기사들이 당에 많이 가입했다. 이 분들이 손으로 쓴 입당원서를 보는데 뭉클했다. 손이 곱아서 글씨가 삐뚤빼뚤했는데 추운 날씨에 힘들게 일하느라고 그런 것 같다. 매년 노사 갈등이 생겨 고공농성을 하는 모습도 봤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 원청이나 협력업체의 반발은 없었나.

“협력업체 한 곳이 저를 거론하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입장을 사내게시판에 부착한 적도 있다. 업계의 반감이 그 정도로 크다는 얘기다. 도급기사가 너무 관행처럼 사용돼 사업자들은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보좌진들에게 사업자 반발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도급기사 사용이 불법인 걸 미래부가 인정한 상황에서 사업자를 국회에서 바로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불법을 눈감았든, 몰랐든 미래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 정기훈 기자

“위험의 외주화 더 이상 안 돼”

- 업계는 도급기사와 관련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무자격자가 할 수 있는) 경미한 공사의 범위에 관한 미래부 장관 고시를 보면 경미한 공사는 개인용 컴퓨터나 프린터 주변기기 설치작업 정도다. 도급기사들이 전봇대나 건물 외벽에 설치된 단자함을 찾아 가입자 자택까지 연결하는 작업은 경미한 공사일 수 없다. 지난해 9월에는 도급기사가 비오는 날 작업하다 감전돼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 공사를 경미한 공사라고 주장한다면 위험의 외주화를 계속하고 싶다는 얘기다.”

- 도급기사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규제완화 로드맵이란 게 있다. 일단 행정기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법률 만큼의 위상은 없지만 시장에는 영향을 미친다. 2년 정도 시행해 보고, 시장 상황은 이런데 법률이 미비하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리고는 법을 시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해 규제를 완화한다. 일종의 규제완화 프로세스다. 이번에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도급기사 관련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불법을 관행처럼 해 왔다고 해서 불법이 합법이 될 수 없다. 도급기사들이 사고를 당하면 한 가정의 삶이 무너진다. 기사의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구조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지금 같은 복잡한 하도급구조는 이용자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사에게도 안 좋다. 원청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로 가야 한다. 원청이 직접고용하거나 협력업체를 통해 직접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 대선국면에 접어들면 도급기사 문제가 묻힐 수도 있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건드려 이후 같은 문제가 또 반복된다면 국가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더 이상 설치기사와 도급기사의 희생을 통해 산업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특수고용직이 아니라 노동관련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고용해야 문제가 풀린다.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조만간 정보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국회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

“정의당 대선 끝까지 완주한다”

-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8개월이 지났다. 국회 들어가 보니 어떤가.

“300석 의석 중 6석을 갖고 있는 정당에서 초선의원인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던 날 국회로 들어가는데 시민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국회를 에워쌌다. 말도 못할 정도로 눈물이 많이 나왔다. 우리 뒤에 국민이 있다는 걸 잊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비로소 정치에 눈이 떠졌다. 진심을 갖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부족한 건 국민이 채워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정의당이 주도적으로 국회를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국회가 (국민의사에 반하는 걸) 못하게 하는 건 잘한다. 정의당은 국민 목소리를 국회로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광장의 민심이 국회로 들어올 수 있게 가교역할을 하겠다. 지금도 정치개혁과 관련해 시민사회·학계 그리고 당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심상정 상임대표와 강상구 전 대변인이 당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야권 단일화 가능성은 열려 있나.

“완주 의지는 분명히 있다. 작은 정당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는 건 구시대적인 정치논리다. 결선투표를 통해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당정치가 건강하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결선투표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들이 유의미하게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되고 반영됐으면 좋겠다. 반영이 안 된다고 해도 이후 선거제도 개혁의 불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주권을 학살하는 제도다. 우리 정당정치를 캠프정치라고 한다. 이런 식의 정당정치는 민의를 대변하기 어렵다. 국민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반응하지도 못한다. 학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야당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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