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손해배상과 가압류, 징계와 구속 등 노조탄압 현장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던 사람. 불법·비윤리·반공익 행위를 고발한다는 의미인 휘슬 블로잉(whistle blowing)의 노동자 주인공. 자본이 2000년대 초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노조탄압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손배·가압류에 사회적 경종을 울렸던 현장활동가.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교섭위원 배달호 열사.

배달호는 경남 김해 출생이다. 198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입사했다. 88년 2대 대의원을 맡으면서 노조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93년 7대 대의원, 95년 10대 노사대책부장과 민영화 대책위원, 97년 11대 대의원(3지구대장)과 민영화 대책위원, 98년 12대 대의원, 파견대의원 및 민영화 대책위원, 99년 13대 대의원(3지구대장)과 운영위원, 2001년 15대 대의원과 파견대의원, 2002년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노동조합 임원 등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였다.

두산중공업은 2000년 정부로부터 한국중공업을 헐값에 인수한 뒤 1천124명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내쫓았다.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2002년 한 해에만 노조간부 89명 징계해고, 22명 고소 고발과 구속, 7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사상 초유의 단체협약 해지 등 온갖 노조탄압이 자행됐다. 조합원들의 개별적 성향을 일일이 분석하고 분류한 뒤 가족까지 동원해 철저한 노조 말살 정책을 폈다. 당시 가장 총체적이고 악랄한 노동자 탄압 현장이 두산중공업이었다.

교섭위원이던 배달호는 2002년 7월23일 두산중공업 파업투쟁으로 구속됐고 9월17일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감옥에서 나온 그에게 재산과 임금 가압류, 정직 3개월의 징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해 12월26일 현장에 복귀했고 이듬해 1월9일 부당한 자본의 횡포와 정권의 묵인에 항거해 분신으로 운명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을 유서 두 장에는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 가압류, 급여 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중략)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 당시 425억원의 손배 소송과 파업 참가조합원 5천여명에 대한 가압류를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두산중공업지회와 발전노조 두 노조는 2002년 같은해 파업을 했고, 손배·가압류 등 노조탄압에 시달렸던 방식도 같았다. 그해 말 수배와 구속 상태에서 벗어났던 필자는 출소인사를 겸해 2003년 민주노총 시무식에 참석했다. 그날 모란공원에는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고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이 이 무슨 불길한 징조냐며 웅성거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자유의 몸이 돼 막 활동을 재개하던 필자에게 며칠 후 들려온 배달호의 분신사망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그렇게 시작된 2003년은 온통 열사정국이었다. 배달호 열사 투쟁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이 노조탄압에 항거해 목숨을 던지는 일이 한 해 내내 줄을 이었다. 치열한 투쟁과 처절한 장례로 보낸 1년이었다. 당시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불리던 손배소와 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그때뿐. 지난 15년간 끝없이 반복되고 교묘해졌다.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 39개 사업장 345억원이던 손배소 청구액이 이명박 정권에서 1천억원대에 진입했다. 2014년 박근혜 정권에서 1천691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 민주노총과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공동 집계에 의하면 사용자들의 최소 손배 청구액 규모는 1천521억원(20개 사업장 57건)에 이르고 있다. 손배 청구가 노조에서 조합원 개인으로 무차별 확장하고 악용되면서 고통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명을 떨쳐 온 손배·가압류에 목숨을 던져 휘슬 블로잉을 했던 배달호. 벌써 15년째가 됐다. 하지만 그 악마의 제도는 적폐 중의 적폐로 노동자들을 여전히 사지로 내몰고 있다. 지난 10일 광화문에서는 쌍용차 범대위·손잡고·광화문캠핑촌 등이 손배·가압류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해 시민사회의 대응과 농성돌입을 선언했다. 배달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노동권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던 것. 그래서 2017년 엄동설한에 촛불을 켜고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하는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며 간절히 기다리는 노동의 봄, 혹은 혁명.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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