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2011년 3월께 있었던 일이다. 2010년 겨울부터 그해 1월까지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본인을 극 중 길라임으로 착각하고 사는 부족한 사람이 계실 정도니 인기가 대단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 사법연수원에서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연수원생들이 체육대회에서 입을 반티 뒷면에 새길 문구를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수년간 고시공부에만 시달렸던 터라 창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이들이라 도무지 진전이 없었는데 한 연수생이 사회지도층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고,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했다. ‘사회지도층’이라는 말이 <시크릿 가든> 남자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말이라며 다들 좋다하니 우리 반의 공식 명칭은 사회지도층이 됐다. 그리고 체육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지역 신문에는 우리 반의 반티 사진을 두고 정신 못 차리는 사법연수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한쪽은 박장대소를 하고 다른 한쪽은 비난을 쏟아 낸 이유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연수생들은 당시 유행한 드라마를 생각했지만 아마도 그 기자는 판사나 검사가 될 사법연수생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다양한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일단의 노동자들이 다니던 회사를 떠나 동종업계 신설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더 높은 연봉, 안정적인 고용환경, 전문적인 경력 등 저마다 희망한 이유는 달랐겠지만 회사는 자리를 옮긴 새 식구에게 직급을 부여하고 일정한 연봉을 약속했다. 물론 구두로. 2년의 시간이 흘러 회사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분기별 인사 및 실적 평가를 통해 매년 말 연봉 협상 때 이를 반영해 저성과자는 25%까지 연봉을 삭감하고, 매년 거듭 삭감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변경된 인사제도에 따라 연봉 8천만원을 받던 경력 25년차 부장은 2년 만에 대리 수준의 4천만원대 연봉을 받게 됐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변경한 인사제도는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임에도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입사시부터 존재했던 취업규칙에 “연봉은 인사평가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는 한 줄짜리 규정으로 인해 새로이 도입된 인사제도는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이 변경된 인사제도를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라고 본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에게 도입된 인사제도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취업규칙에 연봉은 인사평가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으므로 현행 인사제도는 취업규칙을 새롭게 변경한 것이 아니라 구체화한 것에 불과해 취업규칙의 변경도 아니고, 불이익하지도 않다는 것이 법원의 인식이고 평가였다.

반면 결국엔 회사를 나와 일용직 건설노동을 하게 된 노동자의 입장은 이렇다. 20년 다니던 직장을 옮겼다.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녔으면 희망퇴직에 서명하지 않는다며 괄시와 천대를 받을지언정 5년은 더 다닐 수 있었고 연봉은 현상 유지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옮긴 회사에서는 고작 4년 다녔는데 연봉은 절반이 됐다. 입사할 때 인사담당자는 직급별 연봉 수준을 알려 줬고, 그 수준에서 연봉이 결정될 거라 모두 생각했다. 취업규칙은 보지도 못했지만 매년 25%나 삭감이 가능하고, 하한도 없이 거듭해서 삭감될 줄 알았다면 대학에 입학할 자녀를 둘이나 두고 이 회사로 옮기진 않았을 것이다. 인사평가를 통해 연봉이 가감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고 있었지만 2년 만에 연봉이 반토막 날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없었다. 적어도 다른 부장들 받는 만큼은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판사도 항소 기각률에 따라, 상급자의 인사평가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20년 재직한 부장판사의 임금이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더라도 인사평가에 따라 연봉이 가감될 수 있다는 대법원 규칙이 있다는 이유로 예상할 수 있었다고 인식하고 평가할 것인가. 한 번도 직접 판결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그들의 고충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풋내기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들은 기사를 보고 부끄러워했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 법원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 뻔한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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