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 하면서 '생명권 보호의무 및 성실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중요한 사유 중 하나로 제출했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대통령으로서 헌법 10조에서 도출되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해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2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쟁점에 대해서도 판단하겠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요구에 따라 10일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7시간 행적을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측은 당일 19번의 보고를 받았고 7번의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19번의 보고를 직접 받았는지, 그 보고서를 읽어 보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지시를 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설령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이미 세월호가 기울어져 있는데 객실 내부를 제대로 살피라고 지시하거나,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특공대 투입을 지시하는 등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지시를 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모든 국민이 마음을 졸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그 시간에, 대통령은 상황을 몰랐다는 점이다. 관저 집무실에서 일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확인된 대로 그곳은 위급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거나 확인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왜 세월호 참사를 제때 인식하지 못했고, 왜 제대로 된 구조지시를 내리지 않았는지 우리는 묻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탄핵사유로 인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안전을 '비용'으로 간주해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는 정부 때문에 우리 사회는 위험해졌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은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돌렸다. "수학여행 가다가 난 사고도 정부가 책임져야 하냐"는 정치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서부터 "생존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대책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참사 책임을 철저히 외면했다.

기업들도 사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위험사회에서 죽음의 책임을 개인에게 넘기면 우리는 모두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다면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역할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생명을 지킬 헌법상 권리를 구체적 권리로 갖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지킬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면,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적 책임만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안전 규제를 완화해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 것에도 책임을 져야 하며,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기업들이 위험을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그것도 책임져야 한다.

죽음에 이르는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제대로 자원을 동원하지 않은 이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들과 국민은 생명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면서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게 만든 기업은 처벌받아야 하며, 가습기 살균제 등으로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도 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생명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며, 그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책임을 은폐하려고 저지른 일은 참으로 심각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하고 언론을 통제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왜곡된 소문을 퍼뜨리고, 보수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폄훼하는 집회를 하고 심지어 법원에 압력을 행사해서 정부 책임을 적시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정확하게 알게 됐다. 생명권을 지키지 않는 정부는 민주주의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민들의 의지는 이제 우리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되고 있다. 구의역 참사로 희생된 청년노동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에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에게 이제는 책임을 제대로 묻자. 제대로 감시하고 통제하자. '생명'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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