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훈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정경유착의 밑바닥을 여실히 보여 줬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 재벌 총수는 뇌물죄로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있다. 개혁이라는 그럴 법한 이름을 달았던 파견 확대나 성과연봉제 같은 노동의제도 실상은 그 범주 안에서 움직였을 개연성이 크다. 활활 타오른 촛불 덕에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안 심리를 시작했다. 거꾸로 선 나라를 제대로 세우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나라의 모습을 고민해 <매일노동뉴스>에 보내 왔다. 일곱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지난 2011년 12월 TV조선에 출연한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향해 진행자는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켜신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박비어천가’의 끝판왕이다. 이 말은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사며 갖가지 패러디물을 낳았다. 권력자를 향한 민망하기 짝이 없는 행태는 종합편성채널(종편)이 탄생할 때부터 예고됐다. 이명박은 종편을 진두지휘할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사령탑에 자신의 멘토라는 최시중을 앉혔고, 조·중·동과 매일경제 등 대표 보수신문사에 종편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이어 이명박근혜 정권에 이르도록 KBS와 MBC에 낙하산 사장을 내리꽂아 정권은 양대 공영방송을 손아귀에 넣었다.

가뜩이나 조·중·동·매가 신문시장의 80% 이상을 과점한 상황에 더해 방송까지 장악하면서 보수매체와 진보매체의 비율은 8대 2 또는 9대 1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지난해 4·13 총선 보도는 이런 보수매체들의 편파·왜곡으로 물들었다. 여권에 불리한 내용은 물타기로 희석했고, 야권에겐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국민은 불공정·편파 보도에 속지 않았고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들었다. 조선일보와 종편은 발 빠르게 표변했다. 친박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본 조선일보는 정권 최고실세 우병우를 건드렸다. ‘역린’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약점이 많았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역공 한 방에 힘없이 항복하고 말았다. 송희영 주필의 부도덕성이 폭로된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지난해 9월20일 최초로 최순실의 실명을 거론하며 미르·K스포츠재단을 기사화했고, 마침내 10월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다. 종편은 또 아수라백작처럼 돌변했다. 언제 친정부적인 보도를 했냐는 듯 정권 비판에 나섰다. 박근혜의 형광등 100개 아우라를 부르짖던 TV조선도 ‘박근혜-최순실’을 마구 때렸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섰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들은 보수대연합을 꿈꾸며 호시탐탐 정권 재창출을 노린다.

세상 변한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충성을 다하는 MBC는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박근혜 지지율보다도 못한 3%까지 추락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KBS·MBC뿐 아니라 EBS 등 공영방송과 YTN까지 청와대가 이사진과 사장 선임에 개입해 자질도 갖추지 못한 극우·친박 인사를 심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보도를 요구하던 언론노동자들은 방송 일선에서 배제됐고, 기자직·PD직 등 본연의 업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MBC에서만 무려 250명이 해고·징계·유배당했다.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는 31위에서 이명박 정부부터 하락을 거듭해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 그리고 2017년에는 급기야 70위까지 추락했다.

권력이 더 이상 공영방송과 종편을 멋대로 주무르지 못하도록 만들려면 방송 4법으로 불리는 언론장악방지법 개정이 절실하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야 7대 6 구도로 만들고, 사장은 이사진 3분의 2 이상(9명 이상) 찬성으로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여당이라도 최소한 야당 2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사장을 뽑을 수 있다.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사장 선출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종편도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만들도록 규정해 더는 민망하고 노골적이며 정권편향 방송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당장 3월에 MBC 사장이 교체된다. 늦어도 2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언론장악방지법이 통과돼야 한다. MBC에서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복막암과 싸우고 있다. YTN에서 해고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는 9년째 해고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해고 당시 여섯 살이던 딸이 고등학생이 됐다. 젊은 날 이들의 고통과 이들이 흘린 눈물을 헛되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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