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노정갈등이 심각하게 불거지면서 민간 산별교섭마저 후퇴한 한 해로 기록됐다.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금융·공공부문 노조들의 파업이 잇따랐고 조선업에서는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면서 노동문제가 정치 의제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와 산업 구조조정은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고용위기에 대비하는 사회적 대화가 절실한 가운데 박근혜 정부의 노사정 합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대화 공간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한국노동연구원은 월간 노동리뷰 1월호를 통해 지난해 노사관계를 평가하고 올해 전망을 내놓았다. 조성재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지난해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특징 짓는 용어는 심각한 노정 대립”이라며 “올해는 2%대 저성장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사·노정관계 모두 불안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사회적 대화 복원 가능성이 낮아 어려운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대화 필요하나 쉽게 열리지 않을 듯

지난해에는 연초부터 노정갈등이 심각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 5법과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국노총이 같은해 1월19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파기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불참도 선언했다.

노동 5법과 양대 지침을 둘러싼 갈등은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첨예해졌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금융노조 총파업과 철도노조의 74일간 최장기 파업으로 대표되는 금융·공공부문 노조들의 연쇄파업이 이어졌다.

임금교섭은 더디게 진행됐다. 지난해 임금인상률은 평균 3.5%로 2014년 4.1%, 2015년 3.7%보다 낮았다. 반면 근로손실일수(1~11월 기준)는 190만9천788일로 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0년(189만4천일)보다 많았다. 이정희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에는 조합원 규모가 큰 노조들이 주로 파업에 돌입했고 파업 기간도 길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올해는 경기침체와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민간 노사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정희 부연구위원은 “조선·해운·석유화학을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어 사회적 협의를 통한 고통분담과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 요구가 거셀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회적 대화 전망은 밝지 않다. 노사정위는 지난해 1월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한 후 노사정 대화기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위원장은 이날로 221일째 공석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노동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노동계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연구위원은 대선 시기에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고용 문제 △임금체계 개편 △하청을 포함한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 △노동시장 내부 격차해소 방안 △최저임금 △초기업별 단체교섭·단체협약 효력 확장 문제가 이슈가 될 것으로 봤다.

사용자단체 사실상 해체된 금융권 노사관계 최악

주요 산업별로 살펴보면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금융·공공부문 노사갈등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노조들이 파업을 하면서 버텼지만 상당수 금융·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데다, 올해 1월1일부터 시행한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올해는 노동자들의 공공기관 운영·정책 개입을 위한 법·제도 개선 요구가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3년간 노동자 복지 축소와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개별기관 노사관계는 형해화됐다. 양대 노총 혹은 조직별로 나뉜 공공부문 노조들이 연대 필요성을 느꼈고 실제로 실행했다.

노광표 소장은 “정부가 직접 교섭에 나서든, 별도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든 간에 사용자 역할을 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들은 조직 통합과 함께 산별노조로 조직을 전환하고 공공기관 단체교섭 집중화를 위한 조직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공공기관 운영과 공공정책 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동계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이미 도입했고 경기도 성남시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근로자이사제(노동이사제)가 법제화되거나 다른 지자체로 확산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금융권 노사관계는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노정갈등으로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집단 탈퇴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금융공기업은 산업은행·기업은행·자산관리공사를 비롯해 7개나 된다. 매년 진행했던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간 산별교섭도 성사되지 못했다. 박용철 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 노사가 산별교섭을 시작한 2000년 이후 최대 위기”라고 평가했다.

올해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성과연봉제 도입과 실행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데다, 사용자들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만큼 산별교섭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박용철 연구위원은 “노사관계를 진전시킬 만한 상황 변수가 아직은 없는 상태”라며 “노조와 사용자협의회 간 산별교섭 복원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산별교섭 진전? 긍정보다는 우려 많아

금속산업에서는 노동계가 지난해 조선업종과 현대·기아자동차를 포함한 그룹사별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조선업종에서는 노동계가 조선업종노조연대를 결성해 노정교섭을 포함한 공동교섭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그룹과 두산그룹에서 그룹 차원의 공동교섭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앙 또는 산별교섭 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노조들은 사업장별로 교섭을 하면서 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했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지난해에는 금속노조 차원의 파업이 네 차례나 이어졌고 현대차·기아차·현대중공업·대우조선 등 개별 사업장에서도 임금교섭과 구조조정 이슈로 노조들의 파업이 계속됐다”며 “금속산업에서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업종에서는 희망퇴직·정리해고 같은 인력조정 이슈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 산별교섭을 강화하기 위해 금속산업 노동계는 올해도 그룹사 차원의 공동교섭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곽상신 연구실장은 “지난해 그룹 공동교섭이 성사되지 않은 만큼 올해는 노동계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사용자를 보다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며 “올해 결론을 내기로 한 현대차의 통상임금 해법이 업계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어 눈여겨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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