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연초에 한 대기업 사업장을 방문했다가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최근 현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한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다. 소식을 들려준 노조간부는 돌아가신 노동자의 사인을 과로사로 추정했다.

경찰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노조간부가 그렇게 추정한 데에는 그만한 상황증거가 충분했다. 이 회사는 2013년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해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하루 2시간씩 하던 연장근로를 없애고 심야노동도 줄였다. 게다가 지난해부터는 심야노동 시간을 1시간 더 줄였다. 그 결과 야간조는 새벽 12시 반에 퇴근할 수 있게 됐다. 저녁 9시에 출근해 꼬박 야간노동을 하고 다음날 8시에 퇴근했던 과거의 주야 맞교대와 비교하면 주간연속 2교대는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런데 일부 생산공정은 주간연속 2교대를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주간연속 2교대 시행에 합의하면서 노사가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기존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었는데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회사는 작업속도를 올렸다. 1시간에 10대를 생산했다면 이제는 1시간에 12대를 생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강도는 올라가지만, 임금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공정은 이 시스템이 적용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해당 공정에 설치된 생산설비로는 기존 생산량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작업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설비를 추가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거나. 노사는 후자를 선택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설비를 확충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게 되지만, 회사로서는 투자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노동자는 임금을 더 많이 벌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결국 투자 대신 연장근로를 선택했다. 노사가 주간연속 2교대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이 공정의 문제는 예외로 인정했다. 해당 공정 때문에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이 지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현장 노동자를 과로사에 이르게 한 원인이었다.

최근에는 생산수요가 증가해서 노동시간이 크게 늘었다. 다른 생산공정 노동자는 새벽 12시 반에 퇴근했지만, 이 공정 작업자는 다음날 주간조가 출근할 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했다. 주말 특근도 과도하게 운영했다. 보통 토요일에 특근을 하고 일요일은 쉬는데, 이 공정은 일요일에도 특근을 했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 8시에 들어와서 다음날 아침 퇴근하는 방식이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퇴근한 뒤 오후 3시40분에 야간조로 다시 출근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공정의 동료는 야간노동이 줄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데, 해당 공정 노동자들의 삶의 질만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갔던 것이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사달이 발생할 때까지 노조와 경영진의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1차적 원인은 경영진의 무리한 생산계획이었다. 그러나 노조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공정 노동자의 연장근로수당은 200만원 정도 많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노조의 개입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노조는 개입하는 것이 옳았다. 노사가 통제하지 못한 노동시간은 소중한 생명을 앗아 갔다. 한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지 못한 노사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할 수 있다.

올해도 노동시간단축 문제가 노사관계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자동차 노사가 1월부터 '8시간+8시간'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기아차와 같은 근무형태를 이미 시행 중다. 한국지엠과 쌍용차 노사는 시행방안을 놓고 노사가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는 부품사로 확산할 것이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로사는 산업재해로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과로사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를 ‘세월호 7시간’의 박근혜처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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