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국을 4·19 혁명 당시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3·15 부정선거와 하야, 4·19 혁명과 새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최근 정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탄핵 심판대에 선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을 잡아떼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7시간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탄핵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조기 대통령 선거도 점쳐진다.

60년과 2017년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으로 갈린다. 시공간은 달라도 부패 척결과 개혁 열기는 과거와 현재의 공통점일 것이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노동계도 서 있다. 양대 노총 중 한국노총이 역사의 무대에 먼저 호명됐다. 한국노총은 최근 임원선거에 돌입하면서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다. 되돌아보면 4·19 혁명 후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에는 조직개편과 개혁 바람이 불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임원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한국노총 개혁을 화두로 던졌다. 그들에게 60년과 2017년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이 대통령의 선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혁명은 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단초는 3·15 부정선거였다. 부패한 자유당 정부는 붕괴했다. 대한노총은 자유당과 결탁했고, 3·15 부정선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했다. 4·19 혁명 후 대한노총은 자유당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한노총은 혁명의 열기를 비켜 갈 수 없었다. 대한노총 위원장이던 김기옥씨는 출신 노조인 자유연맹 산하 부산부두노조에서 쫓겨났다. 부산부두노조 조합원들은 자유당을 지지한 노조간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간부진 전원이 사퇴했다.

부산부두노조에서 촉발한 조직개편은 대한노총 산하 조직으로 확산했다. 노동조합 자주성과 민주성 회복에 대한 조합원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대한노총 내부 조직개편과 맞물려 신규노조 설립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4·19 혁명의 열기가 노동현장에 민주화의 싹을 틔운 것이다. 당시 보건사회부 통계(61년)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558개(59년)에서 914개(60년)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조합원은 28만438명(59년)에서 32만1천97명(60년)으로 증가했다. 노동조합 민주화와 양적 팽창이 동시에 이뤄진 셈이다. 4·19 혁명 후 노동계가 이룬 소중한 결실이다.

4·19 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듯, 노동계에 분 새바람도 오래가지 못했다. 단위노조에서 시작된 조직개편 흐름이 상급단체로 이어졌지만 지지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주류 노동운동을 비판했던 전국노협과 기존 노동운동을 대변한 대한노총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노련'으로 통합했으나 내홍을 수습하는 데 실패했다. 61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노동운동을 군홧발로 짓밟아 버렸다. 개혁을 회피하려 했던 대한노총은 파국을 맞았다.

한국노총은 24일 새 임원을 선출한다. 이번 선거는 1천만 촛불시민의 열기가 광장을 메우는 상황에 치러진다. 새 임원은 조기 대통령 선거라는 권력재편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와 저성장 체제라는 힘겨운 상황과 맞닥뜨려야 한다. 그래서인지 임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한국노총 개혁과 부패정권 교체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 종전 한국노총 지도부들도 한목소리로 개혁을 약속했다. 참신한 내용이 없어서 개혁이 무산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언제나 지도부의 의지였다. 선거 당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지도부가 선출돼야 한다. 임원선거는 이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장이다.

이번 임원선거는 좀 더 치열하게 진행돼야 한다. 지금 같은 시국에 차분하게 진행되는 선거는 향후 개혁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합원들의 힘을 모아도 쉽지 않은 정국이다. 후보들이 살아 있는 선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토론과 실천을 이끄는 적임자를 뽑는 장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개혁과 정권교체의 결실은 ‘노동조합 조직률’ 확대다. 개혁과 새로운 노동운동의 밀알은 조직적 자산이라는 기름진 땅에서 싹을 틔운다. 조직적 자산을 늘리는 구체적인 복안을 제시하는 후보가 뽑혀야 한다. 정치적 진출이라는 개인적 자산 늘리기에 골몰하는 후보자는 선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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