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요즘 우리 언론은 특검에 빨대를 꽂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캐는 데 혈안이다.

동아일보는 10일 12면 톱기사로 '박 대통령이 창비-문학동네 언급하며 지원 삭감 지시'라는 제목으로 특검 수사 뒷이야기를 보도했다. 물론 이 발언의 진원도 특검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특검은 박 대통령이 2015년 초 김상률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게 창비와 문학동네 등 좌파 문예지를 직접 거론하며 지원 중단을 지시했다. 발언이 사실이면 대통령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주범이다.

같은날 동아일보는 '블랙리스트 인정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 사표 받아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사설만 읽으면 너무 당연한 주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사설과 12면 기사는 앞뒤가 안 맞다.

조 장관의 사표를 받을 대통령이 사건의 주범인데, 누가 누구에게 사표를 받는단 말인가. 10일자 사설과 기사의 앞뒤 안 맞는 모양새는 요즘 우리 언론이 처한 혼돈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설 제목은 ‘조 장관 사표 받아야’가 아니라 ‘조 장관 사퇴해야’가 맞다. 이 정부에 사표 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앞뒤 안 맞는 기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0일자 거의 모든 언론에 실린 ‘6개 부처 2017년 업무보고’ 관련 해설기사에서는 한결같이 '65세 넘어도 고용보험 가입하고 실업급여 받는다'(조선일보 10일 14면)는 제목으로 업무보고의 핵심을 짚었다.

그런데 65살 넘도록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는 게 전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의 오명을 벗는 길인가. 우리 정부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수십년 동안 숱한 노력을 기울였다. 언론도 잘 안다. 법정 은퇴연령보다 최소 10년 이상 늘어져 70세를 훌쩍 넘긴 실질 은퇴연령을 낮추는 건 우리 모두의 숙제다. 언론도 종종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조치는 그동안의 노력과 정반대다. 그렇다면 비판기사가 나와야 한다.

이번 조치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안 된다. 65세 이상 노동자는 대부분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로 일한다. 이들 일자리가 최저임금 선상을 떠도는 질 낮은 일자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경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서비스업에 내몰린 고령 노동자들은 저임금도 저임금이지만 감정노동에도 시달린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조선시대 궁녀보다 못하다. 궁녀는 보통 8시간 일하고 다음날 하루를 쉬는 격일 근무제로 근무환경이 비교적 좋았다. 궁녀 중에서도 비교적 장시간 노동이었던 왕과 왕비의 침실을 지키는 지밀나인도 3교대로 12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었다. 요즘 아파트 경비원이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여가시간이 많은 궁녀들은 놀이나 바느질·글씨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궁녀들의 녹봉은 무수리부터 나인을 거쳐 제조상궁까지 계급에 따라 달랐지만, 같은 직급이라면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받았다. 노동강도에 따른 월급 차이는 요즘 말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인 셈이다. 힘든 일을 많이 하는 무수리는 쌀을 6말 받아, 그보다 직급이 높은 나인들보다 2말을 더 받았다.

인조·효종·현종 세 임금을 모신 상궁 박씨는 자기 명의로 부동산을 사고 국가에 공증까지 받았다. 그 재산이 최소 1만평 이상이었고, 노비까지 부리는 지주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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