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 1천300여명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12일 판결 직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와 법률대리인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최종범·염호석 열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눈물 흘리지도, 고개 숙이지도 말고 정규직 쟁취 위해 계속 싸웁시다."

라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 법원 판결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조합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1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판결 뒤다.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부장판사 권혁중)는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 1천335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위장도급·불법파견 아니다" 판결

재판부는 "협력업체 실체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근로자 파견관계에 해당한다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기사들을 삼성전자 정규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측은 소송에서 협력업체가 경영상 독립성이 있는지를 두고 다퉜다. 지회는 원청이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게 업무 지휘·감독, 임금 지급, 교육·징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원청 직원이 수리기사들에게 피디에이(PDA)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직접 업무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협력업체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해 수리기사와 원청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측은 "협력업체들이 독자적인 경영권과 인사노무 관리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기사들을 직접 지휘·감독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전자서비스의 이 같은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16가지 기준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이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정확한 사유는 판결문을 확인해야 알 수 있겠다"면서도 "고용노동부가 면죄부를 주며 내세웠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부는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의혹을 규명하는 수시근로감독을 진행했다. 두 달간 조사 끝에 노동부는 "협력업체가 자기자본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노동자를 채용하고 취업규칙을 제정·운영하고 있다"며 "협력업체 이름으로 4대 보험에 가입하고 각종 세금을 납부하는 등 그들의 독자적 경영이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정규직 기대했는데" 고개 숙인 조합원들

지회는 원고 패소 판결 직후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휴가를 내고 전국에서 모인 지회 조합원 60여명은 기자회견 내내 얼굴을 들지 못했다. 눈물을 훔치는 조합원도 적지 않았다.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원청 직원과 수리기사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원청이 근로조건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과 이 사건 형태가 다르지 않은데도 사법부가 이중잣대를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조 변호사는 "수십 가지 불법파견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지회는 "사법부는 간접고용을 확산하고 불법파견을 통해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는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며 "정규직 전환 투쟁을 통해 불법파견 진실을 덮으려 한 사법부가 틀렸음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은 2013년 7월14일 미지급 수당 지급과 근로시간단축 등을 요구하며 노조를 설립했다. 원청과 협력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최종범 조합원(2013년 사망 당시 32세)과 염호석 전 지회 양산분회장(2014년 사망 당시 34세)이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 모두 지회가 승리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라두식 지회장은 이날 조합원들에게 보낸 담화문에서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노조를 출범시켰다"며 "직접고용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끝까지 함께 하자"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