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2012년 11월2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생긴 일이다. 그날 부의된 89개 안건 중 43번째였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당시 김경협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던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의 확대 부분이 다뤄졌다. 2002년부터 활동했던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참여 노조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그리고 2012년 상반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건설노조의 공동투쟁본부 결성으로 야당을 압박해 얻은 결과였다. 개정안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해 노조법 2조의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조법 2조 근로자 정의에 포함시키는 개정안 처리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갑작스런 사태에 당시 소위에 참석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혼란에 빠졌던 것 같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노조법 개정안 발의자이자 법안심사소위원회 성원이었으나 대선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실업자·구직자의 노조 가입 문제도 함께 처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버틴 것이다. 결국 이날 노조법 2조 개정 논의는 매듭이 지어지지 못했고, 이후 19대 국회에서는 다시 논의에 오르지 못했다.

이날의 촌극을 생각하면 할수록 뼈아픈 마음이다. 특수고용을 포함한 노동 3권 보장에 줄기자체 반대해 온 여당이, 그것도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로 악명 높은 이완영 의원이 노조법 2조 개정에 동의하는 뜬금없는 태도를 보면서 야당 의원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의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당시 311회 정기회 제4차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은 국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마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전원 정규직화하겠다’는 얘기를 들고 나오는 등 고용불안과 양극화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친노동적 공약을 쏟아 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 중에 투쟁력이 가장 높은 조직에 속하는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내걸고 공동투쟁을 벌인 바 있으니, 어느 때보다 정치권이 특수고용 노조들의 요구를 의식했던 시절이었다. 비록 이완영 의원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또 새누리당이 실업자의 노조 가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이날 민주통합당은 노조법 2조를 우선 개정했어야 한다. 실업자의 노조 가입 문제는 이미 2004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일관되게 인정돼 온 사안이고 이에 따르지 않는 고용노동부의 위법적 설립신고 반려처분을 바로잡으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날 야당의 판단 부족과 의지력 부재로 인해 1999년 이후 10여년간 요구해 온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입법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후 노조법 2조 개정안은 19대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9월 이정미 의원이 발의했으나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요즘 촛불항쟁과 탄핵정국에서 야당 대선후보들이 친노동자적 태도를 앞다퉈 밝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4년 전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은 연일 자신들이 가장 친노동자적 후보임을 선전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재벌을 살리고 노동자·민중을 쥐어짜는 박근혜 체제에 우리 국민들이 넌더리가 났음이 드러났다. 촛불민심은 탄핵을 넘어 박근혜 처벌, 박근혜 체제와의 단절을 향하고 있다. 이런 염원을 집결해 올해는 반드시 노동 억압 적폐를 청산하고 헌법의 노동기본권을 회복하는 법 개정을 이뤄 내야 할 때다. 2000년대 두 번째 천재일우의 기회에 노조법 2조 개정을 반드시 이뤄 내자.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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