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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필요조건과 노동권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이환춘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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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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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민주화를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에서까지 이루겠다는 놀라운 공약을 제시했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공약만 놓고 보면 누가 새누리당 후보고 누가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경제민주화’ 공약은 보수정당 후보가 제안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경제민주화’를 ‘창조경제’로 바꿨고,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실세는 ‘문화융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만들어 간다는 미명하에 국정을 농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심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와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눈감으면서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 19세 이상 국민이 유권자로서 대표자를 선출해 국정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서구사회도 모든 성인 국민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은 1929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였다. 대공황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힘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사유화하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자본가는 노동자의 투표권을 허용해 정치적 참여를 인정하는 계급타협이 있었다. 노동자는 투표를 통해 경제정책에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었고, 노동정당을 형성해 사회복지·의무교육 등의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거세게 불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런 타협을 뿌리부터 흔들어 버렸다.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고 친기업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세계화 시대의 진리인 양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지침이 받아들여지면서 급속히 신자유주의화가 이뤄졌다. 그 결과 소득의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중산층은 몰락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자본을 가진 사람은 정치적 권리를 넘어 ‘정치적 권력’까지 획득한 반면, 자본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게 됐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가속된 친기업적 경제정책과 노동유연화 정책의 결과 기업과 기성 정치인의 유착은 강화됐고, 생존권을 지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은 불법으로 취급돼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고통을 겪던 국민 다수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신자유주의 흐름에 제동을 걸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노동자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을 약속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이런 공약을 말했을 때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 경제민주화는 임기 1년도 되기 전에 잊힌 약속이 됐다. 그는 70년대가 부활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여전히 국가 주도 경제성장을 앞세웠고, 새마을 정신을 상기시켰으며, 젊은이들이 다시 중동에서 노동자로 일해야 한다는 등의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했고, 비정규직의 일상화, 전 업종의 성과주의를 부르짖었다. 국민이 정책에 반대할 때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외칠 때마다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불법적 시위라 명명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70년대의 귀환이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바란 나라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정치적 권리를 갖고 복지 혜택을 누리며 경제적으로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민은 단지 투표할 권리만 가지고 국가의 결정에 무조건 동의하는 파시즘이 만연한 나라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역사를 되돌리려 한 결과는 탄핵이었다. 국민이 거리로 나서 민주주의 회복을 외친 결과다. 하지만 과제는 쌓여 있다.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비선실세를 몰아내고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뿌리부터 흔들린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국민 대다수는 사용자에게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다.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국민 대다수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 일하고 얻은 수익을 공정하게 분배받을 권리가 확보돼야 이들의 정치적 권리도 지켜질 수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착실하게 지키고,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나가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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