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표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6.12.27 선고 2016카합81412(주택도시보증공사)·2016카합622(기업은행) 취업규칙효력정지가처분



사실관계 요약 및 이 사건 쟁점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성과연봉제 시행 대상을 관리 1급에서 관리 5급까지 전 직원으로 확대하고 성과연봉을 전체 연봉의 30% 이상으로 하며 성과평가에 따른 성과연봉 지급 차등폭을 최대 2배로 하고 성과평가에 따른 기준연봉 인상률 차이를 종전 ±1%에서 최대 ±2%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봉제규정 등을 근로자 과반수 노동조합인 금융노조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 동의 없이 2016년 5월17일 이사회 결의만으로 개정했다. 기업은행은 2016년 5월23일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를 4급 이상 일반 직원들에게도 확대시행하는 내용으로 종전 성과연봉제규정을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의 동의 없이 개정했다. 이에 위 노동조합과 근로자들이 서울중앙지법에 취업규칙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모두 ‘보전 필요성’이 없다며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즉 ① 노동조합에게 이 사건 가처분을 신청할 당사자적격 및 신청의 이익이 있는지 ② 본안소송으로 이행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개정 취업규칙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는데 이것이 적법한 것인지(즉 확인소송에 확인의 이익이 있는지) ③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이 도대체 불이익한 변경이라 볼 수 있는지 ④ 불이익한 변경이라 할지라도 이 사건 취업규칙 개정에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될 만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⑤ 이 사건 가처분 신청에 보전 필요성이 인정되는지다.

가처분 신청 기득권 지키기로 왜곡

우선 대상 결정이 정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와 금융공기업의 승리 선언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해도 좋을 듯싶다. 왜냐하면 대상결정은 ‘① 노동조합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사전 합의권(동의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권리 침해를 주장하며 가처분을 신청할 당사자적격 및 신청의 이익을 가진다. ② 가처분 신청 근로자들의 경우 본안소송으로 이행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기는 하지만 근로자들의 임금이 연봉제규정 등의 개정에 의해 어떻게 변동될 것인지 아직 예측하기 어려워 현재로써는 이행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극히 곤란하기 때문에 개정 규정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할 이익을 부인할 수 없다. ③ 개정 연봉제규정 등의 내용에 의할 때 저성과자로 평가된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개정 전 연봉제규정 등에 의할 때보다 임금액이나 임금 상승률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④ (향후 1년의 기간 전후해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합의를 하거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현 시점에서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함으로써 향후 본안소송에서 제기될 쟁점에 관해서는 조합원들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전 필요성과 관련해서 당 재판부가 이번 가처분 신청의 주된 목적이 임금 감소 위험성 방지라고 보면서 금융노동자들의 연봉수준을 고려할 때 성과연봉제 확대도입으로 인해 생계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는 등 금전배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나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없으므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만한 ‘보전 필요성’이 없다고 판시한 것은 당 재판부가 이번 사건 의미를 충분히 고찰하지 않은 채 민사 가처분이라는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판단했음을 명백히 보여 준다.

극한 경쟁 속으로 노동자들을 내몰아 동료 노동자들을 삶의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돌리게 만드는 성과연봉제는 자본주의의 가장 세련된 노동통제·이윤추구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당 재판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성찰하지 않은 채 가처분 신청 의미를 단순히 임금감소 방지 곧 기득권 지키기 일환으로 왜곡시키고 말았다. 마치 보수언론 사설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단순히 돈 몇 푼 더 받자고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법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권리가 그 누구도 아닌 정부에 의해서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에 분노했기 때문이고, 노동자들을 사람이 아닌 이윤추구 도구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경악했기 때문이었다.

사법부 정치적 판결 유감

한편 대상결정은 사법부가 가장 피해야 할 정치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처분 신청의 보전 필요성이 없다는 논거 중 하나로 당 재판부가 채택한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적어도 성과연봉제 확대 시행 여부에 관해서는 채무자와 채권자 조합 사이에 일체의 자율적인 합의 가능성을 법원이 조기에 봉쇄하는 결과가 된다’고 한 부분은 이번 결정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명백히 단체협약 및 근로기준법 제94조를 위반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법 위반으로 효력이 없으므로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하면 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 재판부는 법원이 노사의 자율적 결정에 끼어들 수 없다고 사법자제(사법소극주의)의 미덕을 발휘하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것은 당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순수하게 민사재판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개입돼 있는 정치적 사안으로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렇지 않다면 노사의 자율적 합의 운운하며 이처럼 판단을 유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원래 사법자제는 국가 통치행위와 관련해서 법원이 국가의 정치적 행위에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소극적 태도를 옹호하기 위해 개발된 이론이다).

이처럼 대상결정은 민사 가처분의 본질에 충실하게 판단한 것 같은 외관을 갖췄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사안이므로 법원이 어느 쪽 편을 드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사법소극주의’가 곳곳에 묻어나는 결정이다. 즉 보전 필요성이라는 민사 가처분의 인용 요건 뒤로 숨어서 역사적 책임을 회피한 결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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