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 구태우 기자

“먼저 간 친구들아!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고 기억할게.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18살의 모습으로 만나자.”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장애진(20)씨는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으며 이같이 말했다. 떡볶이코트를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밝은 갈색머리를 한 장씨는 스무살 앳된 모습이었다. 그는 1천일 전(9일 기준)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친구들 250명을 잃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그래서일까 장씨는 “살아남아 유가족에게 너무 죄송하고 죄를 지은 것 같다”고 울먹였다.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에 시달리는 듯했다.

단원고 2학년 1반이었던 장씨와 8명의 단원고 생존학생들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랐다. 9명의 생존학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적은 편지를 이날 집회에서 낭독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친구들이 보고 싶고, 친구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장씨는 담담하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지만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이 원망스럽고 그 물 속에서 나만 살아나온 것 같다”는 대목에서 눈물을 쏟았다. 낭독을 마치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생존학생들을 안아 줬다. 희생자 어머니가 생존학생 김진태씨의 어깨를 두드리자 김씨는 하늘을 쳐다보며 울음을 삼켰다. 희생자 임요한군 어머니는 2학년6반이었던 이종범씨를 다독였다.

생존학생들과 유가족, 집회 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 998일째 되던 날 열린 촛불집회에서 가슴 깊은 슬픔을 공유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이날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60만명이 참여했다. 상당수는 광화문광장 일대 맨바닥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1천일 지났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천일이 지났다. 2년9개월의 시간이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들은 지난해 1월 단원고를 졸업했다. 대학에 진학한 생존학생들은 올해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된다. 유가족 김영오씨의 첫째딸인 고 김유민양이 구조됐다면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것이다. 둘째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 회계팀에 취업했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참사로 인한 슬픔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존학생들은 희생된 친구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리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함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기도 한다.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존학생들도 안다. 친구를 추모하는 생존학생들만의 방식이다.

생존학생들은 “우리가 잘못한 게 있다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1천일이 지난) 지금쯤 무뎌지고 괜찮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들기도 한다”며 “물 속에서 나만 살아 나왔고, 지금 친구와 같이 있어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고 속상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세월호에 오른 단원고 학생 중 325명 중 250명이 목숨을 잃었다.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에게 1천일의 시간을 추모하는 건 무의미하다.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비로소 날짜를 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씨는 1천일 촛불집회에서 발언하기 위해 동거차도에서 상경했다. 유가족들은 당번을 정해 세월호 인양작업을 감시하고 있다. 이날은 참사 당시 2학년7반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당번을 서는 날이다. 허씨는 무대에서 “남현철, 조은화, 허다윤 … ” 등 미수습자 이름을 한 명씩 언급했다. 그는 “아직도 팽목항에는 가족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고, 세월호에는 9명의 생명이 있다”며 “(미수습자)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지켜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유가족들은 촛불집회를 열어 준 국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탑승자 구조에 실패해 304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유가족들은 특히 이달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요”라고 발언한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포함됐는데도 정작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몇 년에 발생했는지 모를 정도로 뻔뻔하다”며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을 하루빨리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자 임세희양 아버지 임종호씨는 “하루빨리 진상이 규명돼 아빠가 너희들 죽음 밝혔다고 눈물 흘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날한시 몰살되다니”

이날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비상국민행동에 따르면 최근까지 세월호 참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에 1천만명 넘는 국민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천만개가 넘는 세월호 리본이 제작됐다. 세월호 노란리본공작소 관계자는 “지난해 260만개의 리본을 만들었는데 월평균 21만5천개를 광화문광장에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민 9명은 산소탱크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부지런히 펌프질을 했다. 탱크에 산소가 꽉 차면 뱃고동 소리가 가늘고 길게 광장 일대에 울려 퍼졌다. 이 기계는 거리예술가 이성현(37)씨가 제작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산소를 채우고 뱃고동 소리를 만드는 시민참여형 예술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해치마당에 놓여진 304개의 구명조끼 뒤에 놓였다. 이씨는 “세월호에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면 희생자들이 살 수 있었을 거 같아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뱃고동 소리가 희생자에게 전달돼 유가족과 국민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0년차 교사인 차아무개(48)씨와 고등학교 1학년 강민경(17)양은 세월호 참사 당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전원 구조됐다"는 언론보도를 철썩 같이 믿었다가 오보로 밝혀진 뒤 망연자실했기 때문이다. 차씨는 그날 아이들이 구조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여느 때처럼 수업을 했다. 강양은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쉬는 시간마다 TV로 실시간 구조상황을 지켜봤다. 강양은 “열 명 스무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침몰하는 배 안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어떻게 사람 목숨을 두고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언론은 오보를 낼 수 있는지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매년 4월이 되면 우울감이 들고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차씨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순간에 몰살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말을 하지 많고 지금 매순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정유년 새해에는 세월호가 인양되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재가동돼 진상이 규명되기를 염원했다. 해양수산부는 당초 지난해 7월까지 세월호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선체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은 선수 들기 작업에 6차례나 실패했다. 해수부는 인양시점을 2017년 6월까지로 연기했다. 특조위는 활동기간 등을 두고 정부와 마찰을 빚다 지난해 9월 강제로 해산당했다.

특조위가 재가동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할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는 이날 촛불집회에서 공식 출범을 알렸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지난 1천일이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와 맞서 싸운 시간이라면 앞으로 1천일은 국민이 직접 세월호 진상규명을 해 나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피해자인 국민이 진상규명을 함께해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강조했다. 국민조사위는 창립선언문에서 “우리가 잊지 않기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기에 미수습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며 “우리가 함께하면 거짓의 실체가 드러나고, 우리가 행동하면 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민경양은 “세월호가 인양되고, 특조위도 다시 출범해 세월호와 관련한 모든 게 밝혀졌으면 좋겠다”며“이런 참사가 안 일어나고 매주 집회를 안 해도 될 만큼 평범하고 제대로 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416개의 노란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풍선에는 종이로 접은 노란배가 매달렸다. 하늘로 올라간 풍선에 달빛이 비치면서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됐다. 저녁 늦게까지 광화문광장 일대에 뱃고동 소리가 이어졌다.

한편 밤 10시30분께 서아무개(64)씨가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몸에 휘발성 액체를 끼얹고 분신했다. 서씨는 정원이라는 법명을 쓰는 스님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경찰은 내란사범 박근혜를 체포하라. 경찰의 공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경찰은 해산하라”고 자필로 쓴 스케치북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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