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콜린 캐퍼닉은 미국 프로풋볼 선수다. 지난해 8월 경기 전 열린 국민의례에서 그는 국가가 연주되고 모든 사람이 기립해 오른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대고 있을 때 혼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캐퍼닉은 이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라며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자부심을 보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뒤 그의 행동을 두고 비난이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는 “캐퍼닉에게 더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서 떠나라고 해 봐라. 아마 아무 데도 못 갈 것”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게 표현하는 캐퍼닉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며 그를 옹호했다. 오바마는 덧붙여 “캐퍼닉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이 땅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행정자치부가 국민의례 방식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통령 훈령을 개정했다. 공식행사와 회의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것 외의 묵념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 밖의 사안들, 예컨대 5·18 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 희생자,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은 국론 분열의 우려가 있어 국가 허락 없이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한다. 꼼꼼한 정부는 "묵념은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애국가는 선 자세로 힘차게 제창하되 곡조를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대통령이 아닌 자가 대통령훈령까지 고쳐 가며 행세를 하는 모습도 꼴사나워 보이지만, 그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광장의 촛불들이 "이게 국가냐" 하고 외치고 있을 때 국민이 갖춰야 할 의례를 고치는 정부를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헌법이 유린되고 국정이 농단당한 국가를 광장의 촛불이 바로잡았듯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가치는 1960년 4월, 80년 5월, 87년 6월의 학생과 시민·노동자들이 만들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묵념으로써 그 뜻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정장을 입은 정치인들이 선 자세로 제 아무리 힘차게 제창한다고 해도 애국가의 감동과 힘은 100만 시민이 모인 광장에서 가수 전인권씨가 읊조리듯 때론 포효하듯 부른 그것을 결코 따라오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황교안씨의 영혼 없는 애국심 타령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지난해 1월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통해 공직가치 조항에 ‘민주성’을 빼고, ‘애국심’을 넣으라고 했다. 애국심이 공무원 선발기준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손석희 JTBC 앵커는 “애국심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애국가 완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는 것, 이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꼬집었다. 해괴한 질병으로 군 면제를 받고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는 필수과목이 된 그들이 아닌, 바로 우리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비난을 받은 캐퍼닉은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뜻에 함께하는 선수들이 풋볼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늘어났으며 그의 행동을 따라했다. 민주주의,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둔 애국심은 이렇게 퍼져 가는 것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