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 총파업과 2015년 민중총궐기 개최를 이유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춘천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상균(54·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빚진 마음을 갖지 않을 노동운동가들이 있을까.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가 2014년 위원장 직선투표에서 "쌍용자동차 투쟁만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며 망설임 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이유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복역한 그는 지금 다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민주노총 총파업을 주도했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를 주최했다. 그의 죄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2016년 촛불집회는 한 위원장 구속의 빌미가 된 민중총궐기가 정당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광장에 모인 노동자들이 "한상균은 무죄다" 또는 "한상균을 석방하라"고 외친 이유다.

영어의 몸인 한상균 위원장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궁여지책으로 서신 형태로 질문지를 전하고 답장을 기다렸다. 지난해 12월 춘천교도소로 보낸 편지지 한 장은 이달 3일 편지지 6매 분량의 답장으로 돌아왔다. <매일노동뉴스>가 한 위원장 편지를 인터뷰 형태로 재구성했다.

"민주노총 이런 날 올 줄 알고 견뎠다"

- 지난해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노동 관련 이슈도 많았다. 소회를 말해 달라.

"노동자·민중이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 종지부 찍을 천금 같은 기회를 만들어 낸 가슴 벅찬 한 해였다. 분노는 차고 넘쳤지만 칠흑 같은 밤을 헤쳐 나가며 만신창이가 됐던 지난 시간이 겹쳐진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해도 2천만 노동자를 위해 선봉에 서는 것은 역사가 민주노총에 부여한 숙명이기에 질기게 싸워야만 했다. 전세를 뒤집어엎을 단 한 번의 승리가 절박했다. 박근혜는 '이러려고 대통령 됐는지 자괴감이 든다'며 국민을 기만할 여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2천만 노동자를 책임져야 할 민주노총은 좌고우면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짓밟히면 다시 일어나 총파업 투쟁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악으로 견뎌 왔다."


-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이후 많은 이들이 탄압을 받았다. 촛불민심이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듯한데.

"광장의 노동자·민중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박근혜 패거리뿐만 아니라 개돼지로 살라 했던 박근혜 체제까지도 단죄·척결해야 한다고 이 땅의 주인들은 외치고 있다. 평등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함성소리가 벽을 넘어 여기 감옥까지 들린다. 재벌과 소수 기득권만을 위해 작동한 이 나라를 바꾸는 일은 박근혜 탄핵과 정치세력 교체로만 될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주말을 반납하고 가족과 함께 광장으로 모이고 있는 게 아닐까."


- 박근혜 정부 부역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정권 4년은 총칼만 앞세우지 않았을 뿐 유신독재를 부활·진화시킨, 오만한 권력의 패악질이 집약된 시간이었다. 박근혜 패거리들은 이런 체제가 영속되리라 믿었고, 이를 위해 온갖 패악질을 했다. 지금도 반성은커녕 국민을 상대로 끝까지 가 보자며 뻔뻔함의 극치를 보인다.

첫 번째 희생자는 노동자였다. 그들은 이 땅의 마지막 저항세력인 민주노총을 적으로 규정하고 짓밟기 위해 헌법과 법률에 따른 형식적 절차마저 깡그리 무시한 채 탄압했다. 재벌과 공모해 쉬운 해고와 전 국민 비정규직화, 성과퇴출제를 밀어붙였다. 민주노총을 저항할 수 없는 조직으로 만들고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촛불이 없었다면 어찌 됐겠는가. 신유신체제가 완성되고, 박근혜 아바타들이 이 나라를 5년, 10년 더 지배할 수도 있었다."

"광장 요구 실현할 수 있도록 대선 준비해야"

-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선정국이 시작되면 광장 민심이 현실화하지 못한 채 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는 천금 같은 기회를 잡았다. 물론 대선정국으로 촛불이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에 대한 대비를 촘촘히 해야 한다. 촛불의 요구를 실천할 진정성 있는 노동자·민중후보를 내야 하는데, 아직 중론이 모아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살리기 위해 대선투쟁 목표를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2월7일 열리는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그런 자리가 될 것이다. 올해 스물두 살이 되는 민주노총이 청년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다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위원장 3년 임기 중 1년이 남았는데. 2년을 돌아본다면.

"지난 2년은 짝사랑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짝사랑은 2천만 노동자와 한편이 되기 위한 구애다. 노력이 부족했지만 최저임금 1만원,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미조직 노동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진전된 결과를 만들지 못해 아쉽다. 두 번째 짝사랑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력이다. 현재 조건에서 정치세력화는 양날의 칼인 것은 분명하다. 조직 내부에 지난 시간의 상처가 남아 있다. 거대한 민중의 분노 앞에 대의가 무엇인지 각자 고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갈등 문제는 민주노총의 위상과 투쟁력 제고와 직결된다. 민주노총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짝사랑은 따로 떼어 내서 생각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냄새가 나야 한다. 사람냄새 없는 운동은 아무리 과학적이라 하더라도 현장 조합원과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담대한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 올해 우리 사회에 일대 격변이 예상된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지난해 여름 접견장을 찾은 동지에게 했던 말이 있다. 50만명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100만명이 모이면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선전하자. 그렇다면 100만 민중총궐기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모두 조금 더 힘을 내고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지금 민중은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차별과 착취로 피눈물마저 말라 버린 비정규직 동지들의 절박함을 해결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 광장에서 '두려워 말고 노조에 가입하자'고 외치자.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평등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숨 가쁜 한 해를 보낼 생각을 하니 무섭기도 하지만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국노총과도 지난해처럼 공공·제조·금융부문 공동투쟁을 강화하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의를 바탕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해 나갈 것이다."

"엄중한 한 해, 적폐 척결투쟁 멈추지 않겠다"

- 조만간 석방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석방된다면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노조 조직률 50%를 평생 꿈으로 새겼다. 출소 후 어떻게 실행해 나갈지 방향을 잡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고민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노력이 중요하다. 상상해 보자. 200만·500만·1천만명으로 조합원수가 늘어난다면 무슨 일이 가능할지 말이다. 산별교섭·노정교섭으로 노동자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복지·의료·조세·통일·지방분권 등을 노동자·민중의 바람대로 바꿔 나갈 수 있다. 이 길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조 조직률이 이 사회에 어떻게 순기능을 미치는지, 국익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를 심층 분석해 보도하는 것은 어떤가. 대선 후보들에게 '멍청아 문제는 노조 조직률이야'라고 지적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수감생활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조속한 탄핵이 이뤄지고 곧바로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유년 새해는 2천만 노동자와 전 민중의 명운이 걸린 엄중한 해다. 박근혜와 임기가 같았는데(한 위원장의 임기는 올해 12월 말까지다), 그를 퇴진시키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민주노총은 기울어진 노자(노동-자본)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단 한 번의 승리를 준비하고 있다. 한광호 열사는 아직 냉동고에 있고, 공공기관 성과퇴출제 등 박근혜 반노동정책은 탄핵시키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헬조선을 바꿔 낼 수 있을지 물으면서 몸부림친다. 민주노총은 수많은 적폐를 척결하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감옥에 있지만 혁명을 위한 투쟁을 외칠 수 있어 한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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