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이 글의 제목은 지난해 12월31일자 <조선칼럼> 제목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무거운 이유’라는 제목에 대한 반어법이다. 자유경제원장 현진권이 쓴 그 칼럼은 자신의 마음이 무거운 이유로, 경제적으로 대의민주주의가 효율적인데 대한민국은 2016년에 광장 촛불집회를 민심으로 치환해 직접민주제의 틀을 씌웠고,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들의 주장인 “문제는 자본주의다” “사회주의가 답이다” “이석기 석방” 같은 구호가 촛불집회에 공공연히 등장했으며, 헌법재판소의 법치가 촛불의 함성과 정치권의 압력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글은 또한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신년호 사설에 대한 반론이다. 그 사설은 “자유주의자들은 패배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념 투쟁에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을 기꺼이 적극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주의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브렉시트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내딛는 길과 반대로 “개인의 창의, 기호(嗜好), 사업능력(enterprise) 등이 제한 없이 충분하게 표현되는 자유주의 체제를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칼럼과 마찬가지로 이 신문의 사설에서도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역사는 끝났다고 외친 지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2017년은 20세기 최대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다.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의 최하층 계급이 주력군으로 떨쳐나서 만든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낡은 봉건사회를 또 다른 계급사회인 자본주의로 대체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한 최초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혁명은 여러 세대가 지난 후 와해됐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포기할 수 없듯이 이 혁명의 참된 뜻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2016년 가을과 겨울에 우리 민중은 촛불혁명이라는 하나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혁명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혹은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근혜가 퇴진해도 박정희 패러다임이, 헬조선 체제가 자동적으로 해체·변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에만 머문다면 혁명은 대선과 개헌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본가 계급의 협치, 인간의 얼굴을 한 앙시앙 레짐(구체제)에 귀결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 퇴진에서 나아가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면 혁명은 성공하는 것인가. 촛불혁명의 목표는 거기까지로 국한해야 하는가.

박정희 모델이나 체제를 개조하는 데 혁명의 목표가 제한된다면 그 혁명은 완전하게 성공하는 경우에도 서구나 미국 자본주의 같은,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는 복지국가나 제왕적 대통령이 없는 의회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달성한 미국이나 서구 나라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 노동자·민중은 그 체제에 만족하고 있는가. 그곳에서 지금 자유주의·자본주의는 심한 불신과 도전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사설조차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자유주의가 부정당하는 이런 세계적 정세하에서 실패한 그런 선발 자본주의·자유주의 정치·경제 모델을 우리 촛불혁명이 지향할 모델로 삼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반란 아닌 혁명이라는 현상은 근대 세계에 속한다. 그런데 월러스타인이라는 석학의 말을 빌리면 근대성에는 기술적 생산력의 획기적 발전으로서의 근대성과 인간과 인간 사이 지배·착취 관계의 소멸 즉 인간해방으로서의 근대성이라는 두 차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전자는 산업혁명으로 상당히 실현됐지만 후자는 자유주의·자본주의하에서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혁명은 그것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거라고 했다. 이 모순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도전이 서구의 68혁명이었고, 1990년대 초 소련·동구 가짜 사회주의(본질적으로 자유주의 체제였던)의 붕괴였다고 했다. 따라서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유주의의 승리와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보여줬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즉 자유주의의 붕괴,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엄청난 정치적 패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쇠퇴 이후에는 두 개의 길이 열려 있는데, 하나는 폭력적 사회갈등이라는 불안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연대의 길 또는 공동체적 대응의 길이라고 전망했다. 후자의 길이 곧 혁신된 사회주의, 참다운 사회주의로의 길, 인간해방의 길이다.

촛불혁명이 인간해방을 지향 목표로 분명히 하지 않을 때, 비록 박정희 모델을 청산한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 혁명은 천민자본주의에서 개선된 자본주의·자유주의로 나아가는 데 머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해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산업혁명으로 민중은 인간다운 삶에서 오히려 더 멀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로의 길을 배제하는 자유주의의 길은 실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다. 고로 짝퉁 진보가 아니라면 마땅히 사회주의에 대한 시민권을 주장해야 한다. 물론 그 사회주의는 실제로는 자유주의인 가짜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적 개인주의와 물질적 부 지상주의 및 자민족 중심성과 무한경쟁을 강하게 자기비판하는, 사회적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사회주의,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라야 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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