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개혁이 노동계에 미친 영향과 충격은 컸다. 긍정적 의미를 담은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노동계는 박근혜표 노동정책에 반발했다. 반대로 재계는 환영 일색이었다. 상당수 정책이 재벌·자본에 유리했다는 의미다.

노동계에 더욱 충격을 줬던 것은 압박 강도였다. 소통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 반대 의견이 들끓고 파업이 잇따랐는데도 현 정권은 '노동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노사정 100명 올해 주목할 이슈 279개 제기

압도적 1위였다. 성과연봉제·노동 4법·양대 지침으로 대표되는 박근혜표 노동정책의 향방이 올해 어떻게 변할까. 계속 추진되는 걸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89표를 받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주목할 노동이슈’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주목할 이슈를 자유롭게 적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들은 279건의 이슈를 제기했다. 성과연봉제(38표)·노동법 개정(36표)·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15표)을 포함한 박근혜표 노동정책의 향방이 가장 관심을 끌었다.

'노동개혁'이나 '노동 4법' 혹은 '양대 지침' 같이 중립적 혹은 주되게 지칭되던 단어를 선택해 이슈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지만 노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는 “노동개악 폐기”처럼 반대 뜻을 분명히 하거나 “노동자를 위한 진짜 노동개혁 추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새로운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성과연봉제나 노동 4법·양대 지침이 강행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문에 응한 경영계 인사는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과 조기대선 국면과 맞물려 노동개혁 입법은 폐기되고 친노동 성향 법안이 입법되거나 관련 공약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반면 노동계 인사는 “노동개악법을 포함한 박근혜 노동정책은 재벌 청부입법·정책”이라며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정책 향방에 대한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졌다. 27표를 받아 4위를 차지했다. 관심의 방향은 이미 탄핵을 넘어 대선에 쏠려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출마한 후보들이 어떤 노동공약을 내세울지, 노동계가 대선에 참여해 정치세력화에 나설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설문에 참여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의원은 “정권교체로 새로운 노정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동전문가는 “대선 과정에서 노동정책과 청년실업 등 고용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고 관심을 표했다.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에서도 “노동계의 대선 참여”에 관심을 두는 이가 다수 있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진보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자리·양극화·비정규직 2·3·5위

노사정·노동전문가들은 일자리와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했다. 나란히 2·3·5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청년실업과 구조조정·대량실업’은 46표를 받아 2위에 올랐다.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정부는 올해 1분기 고용사정이 최악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 분위기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는 더디게 생기는 반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대량실업이 현실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을 넘나들면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요구하는 응답도 많았다. 43표를 받아 3위를 차지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콕 짚어 적시한 이들도 11명이나 됐다. 사회 양극화에 대해서는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근로빈곤·저임금 문제 해결 같은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한 이들도 있었다.

사회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다.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양극화 해소는 핵심 이슈였다. 올해 대선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제기될지 관심을 나타낸 노동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생활임금이나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본소득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있던 시절 양극화 해소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대안제도로 언급한 후 문재인·이재명·박원순·김부겸 같은 야당측 대선주자들이 적극 찬성하고 나서면서 정치권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수당(배당) 형태의 기본소득제를 도입했다.

비슷한 이슈인 ‘비정규직 축소·차별철폐 등 문제 해결’은 올해 주목할 할 노동이슈 5위에 꼽혔다. 26표를 받았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 해를 되돌아보는 <매일노동뉴스>의 ‘10대 노동뉴스’나 올해를 전망하는 ‘주목할 노동이슈’에 해마다 꼽혔던 문제다. 지난해에는 주목할 이슈 1위였다. 노동시장에서 '중요하지만 풀리지 않는'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은 저임금·불안정 노동 문제를 대표한다. 올해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통상임금·노동시간단축, 관심에서 멀어져

지난해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사망한 청년 하청노동자의 죽음과 휴대전화 부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다 메틸알코올(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한 청년 파견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충격은 컸다.

대형 조선소와 석유화학 공장에서도 추락·폭발·누출 사고가 잇따랐는데, 숨진 노동자 대다수가 하청노동자였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구가 만들어졌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한 해였다. 10명(10표)이 주목했다. 이어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간단축 △4차 산업혁명과 노동시장 변화 △재벌개혁이 각각 4표씩 받아 공동 7위에 올랐다.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은 한때 노동이슈 순위권에 들 정도로 주요 관심사였으나 지난해 성과연봉제에 크게 밀리더니 올해 주목할 이슈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노동시간단축도 비슷했다.

하지만 통상임금과 노동시간단축은 근로기준법 개정과 맞물려 있고, 임금체계 개편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앞으로도 주요 노동이슈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재벌개혁 이슈는 민주노총이나 시민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과 노동시장 변화 이슈는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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