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7.8.18 금 13:40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산재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에 대해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최고 수준이다. 산재 사고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감추기 위한 통계상 조작과 착시현상, 그리고 산재 은폐는 지속되고 있다. 산재 문제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고 고민해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선, 산재는 노동자 생명과 존엄의 문제다. 산재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손실로 이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이며,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생명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생명의 손실은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총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최고의 가치를 인간 생명에 두지 않고, 여러 대책과 보상을 논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둘째, 산재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완벽한 안전보건 조치 또는 예방 조치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은 무재해운동, 무사고 O일 같은 은폐적 관점에서 “산재는 나쁜 것이며, 노동자 잘못”이라는 인식을 강요한다. 아무리 안전조치를 하더라도 산재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공상처리 등으로 산재를 은폐하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산재는 노동자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병은 노예의 운명이자, 죄에 대한 대가"라는 중세시대 인식은 1천500년간 지속됐다. 20세기 초 재해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도미노이론 등은 노동자 결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이론은 재해의 궁극적 원인으로 사업주와 경영의 문제를 지적한다. 즉 안전보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대표이사)의 의식과 실행조치다. 산재를 노동자 부주의나 불완전한 행동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근본원인을 감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사업주 책임과 조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사전에 이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산재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하도급 사업장에서 원청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넷째, 노동자 질병은 곧 산재라는 인식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직업’과 질병과의 관련성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직업성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산재로 드러나지 않는다. 질병의 의학적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것이 적다는 문제와 별개로 산재와 직업병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살도 직업 관련성이 크지만 산재 신청은 1년에 수십건에 불과하다. 각종 암이나 뇌혈관질환·면역성질환·피부질환 등 직업병 범주에 포함되는 상병이 실제 산재 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적다.

다섯째, 산재 여부는 의학적 판단 영역이 아니다. 산재 영역 확대에서 의학적인 연구와 성과가 상당히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산재는 법률적 판단의 영역이자 사회보험적 관점에서 규정된다. 그래서 산재와 관련한 법률에서는 ‘상당인과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는다.

여섯째, 산재 승인을 위해 반드시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1년에 발생하는 9만여건의 일반 노동자 산재사건 중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비율은 90%다. 대부분 추락·끼임·미끄러짐 등 인과관계가 분명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질병은 1년 동안 9천여건이 신청되고, 이 중 약 45%가 승인된다. 일반적 사고, 그리고 이후 의학적 판단에 주로 국한되는 장해급여·재요양·추가상병 사건은 전문가에게 위임할 필요가 사실상 없다. 또한 근골계질환은 노동자가 업무내용과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노동자는 산재 신청과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굴뚝 청소를 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어린이였다. 이들에게 발생한 음낭암은 직업성 암의 시초로 기록되지만, 실제 각종 질식·추락으로 인한 사망이 더 큰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1988년 7월2일 15세 소년 문송면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올해 5월28일 구의역에서 19세 노동자가 무분별한 외주화와 안전조치 미흡으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고, 노동자 6명이 휴대전화 가공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다.

예전에 비해 노동환경은 개선됐고, 산재를 당할 확률은 낮아졌다. 그러나 노동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직업성 암과 같은 전통적 직업병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등 신종 직업병이 양산되고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얻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될 때까지 7년 이상이 걸렸다. 주야간 교대제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수면장애는 5년이 걸려서야 산재로 인정됐다. 이로 인해 직업성 암 인정기준이 일부 개정됐고, 수면장애가 공식적으로 직업병으로 편입됐다. 현재도 온전한 산재보험 제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다.

권동희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동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