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자본주의는 경제 영역에서 시민을 노동력으로 표현한다. 경제성장률·실업률·생산성 등 중요한 경제지표에서 시민은 '노동 가능한 사람'이나 '노동시간'으로 등장한다.

노동력은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노동력은 노동시장에서 기업이 돈을 주고 시민에게서 구매한 것이다. 시민과 노동력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계 때문에 기업에 약간의 제한을 가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은 구매한 노동력에 대해 무한한 사용권과 처분권을 갖는다.

시민을 개돼지 취급한 박근혜가 탄핵됐고, 그 부역자들이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촛불의 강도에 따라 수위가 결정되긴 하겠지만 박근혜·최순실·재벌 처벌이 어쨌거나 이뤄질 것이다. 200만 촛불로 뭉친 위대한 시민이 주권자로서 명령을 내렸고, 우리나라 시민은 이 역사적인 ‘뜨거운 겨울’을 함께 지나고 있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권리 없는 노동력’으로서 시민은 사실 여전히 개돼지다. “박근혜가 퇴진해도 내 삶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24세 전기공 청년의 창원 촛불집회 자유발언 내용 중 일부다. 그는 몇 년 전 산업재해를 당했지만 보상 대신 해고를 당했고, 지금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결혼이나 가정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울먹였다. 그리고 자신은 박근혜 퇴진 뒤에도 이런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촛불집회에 참여한 여러분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은 광장의 시민 모두가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도 개돼지 취급, 나라도 개돼지 취급, 우리한테는 온갖 갑질을 했던 대기업들이 최순실·정유라 앞에서는 기어 다니고. 이게 나라입니까?” 12월 초 구로 촛불집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박근혜가 퇴진해 자신의 회사생활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광장에서 주권자였던 시민은 회사로 돌아가는 순간 다시 굴종하는 ‘근로자’로, 경제생활에서 권리 없는 노동력으로 취급된다. 우리 모두 그것을 잘 안다.

이상한 건 광장은 여전히 권리 없는 노동력으로서의 시민, 즉 시민의 주권이 실은 언제나 절반일 뿐이란 점을 문제제기하는 것에 소극적이란 사실이다. 한 예로 광화문광장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석방하라”라는 구호는 은연중 자제되는 분위기가 있는데, 박근혜 퇴진이 목적인 집회에서 '노동 문제'로 싸우다 잡혀간 민주노총 위원장 이야기를 하는 건 집회 참가자 사이에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암묵적 근거다.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내에서도 이 문제로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건 그 규모와 함께 “이게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같은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나라의 토대인 경제영역에서 시민이 무엇인지” 또는 “학교를 졸업하고 다니게 될 직장에서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창원 전기공의 울분처럼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박근혜 하나 퇴진시킨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에서, 그리고 삶의 절반에서 권리 없는 노동력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정한 주권자의 문제, 즉 노동자 권리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우회할 수 없다. 그리고 240만명이 집회를 해도 단 한 명도 잡혀가지 않는 오늘날 “1년 먼저 촛불을 든 죄로 구속된 한상균을 석방하라”는 구호는 이 모든 질문을 압축적으로 담는다. 권리 없는 노동력이 파업까지 하며 온전한 주권자 역할을 하려 하자 정권과 자본은 한 위원장을 가차 없이 감옥에 가뒀다.

과감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촛불이 내년 1월에도, 2월에도 타오르려면 200만 촛불이 200만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장의 촛불집회는 짧고 평생의 삶은 길다. 주권자의 명령을 당당히 외치다 다시 그 끝을 알 수 없는 굴종의 직장생활로, 권리 없는 노동력으로 돌아가는 괴리를 우리는 견딜 수 없다. 박근혜 하나 퇴진시킨다고 크게 변할 것 없는 우리네 삶의 진실이 우리의 구호를, 함성을 짓누를 것이다. 촛불의 ‘뜨거운 겨울’이 삶의 ‘혹한 겨울’로 바뀌는 건 한순간일 수도 있다.

노동조합은 일터의 촛불이다. 단체협약은 굴종하는 근로자가 스스로 뭉쳐 쟁취하는 직장의 노동자 권리헌장이다. “이게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같은 자조 섞인 질문에 민주노총이 당당하게 답해야 한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면 노조를 해야 합니다” 또는 “내 주변의 박근혜를 몰아내려면 노조를 해야 합니다. 노조가 바로 직장의 촛불입니다”라고.

200만 촛불이 200만 민주노총이 되려면, 민주노총 스스로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광장의 촛불이 싸우는 방식을 민주노총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문제를 특수한 고통으로 절규하지 말고, 광장 시민의 보편적 아픔으로 풍부하게 이야기해 보자. 익숙한 투쟁 방식을 잠시 제쳐 두고, 광장의 촛불이 행동하는 방식으로 민주노총 투쟁을 변화시켜 보자.

요컨대 민주노총이 투쟁조끼를 입은 구별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 중의 시민, 촛불 중의 촛불로 나서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촛불이 세상을 바꾸고, 실제 박근혜도 제대로 퇴진시킬 수 있다. 박근혜 퇴진투쟁이 민주노총에서 시작된 만큼 결국 마무리도 민주노총 손에 맡겨져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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