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016년이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한 해다. 롤러코스터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모든 예측을 불허한 한 해였다. 4·13 총선 예측도, 대통령 탄핵 예측도, 전경련 해체 예측도 올해 1월1일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옥스퍼드사전에서 예견하기 어려운 세상사를 꼬집으며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진실이 중요치 않은)를 선정했을까.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불안하다. 안정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2016년의 마지막날을 맞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오히려 희망찬 내일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연초만 해도 노동자들 앞에는 지난 8년(짧게는 3년)과 똑같은 암울한 한 해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봄이 왔다. 지난 총선에서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응원을 얻은 자들 중 다수가 국회에 진출했다. 이른바 노동계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만 20명이 넘는다.

뜨거운 여름을 넘어서면서 시민들과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원인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위임받은 권한을 일개 지인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넘겨준 사실이 밝혀졌다. 하루하루 드러나는 뉴스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다.

예측 불허 상황을 연출한 주연은 누가 뭐래도 시민들과 노동자들이다. 젖먹이부터 학생·어르신까지 매주 토요일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지난달 5일과 19일에는 마침 서울광장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촛불집회를 견인했다. 양대 노총 대회가 촛불을 매주 이끌어 가는 에너지가 됐음이 명백하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연말연시도 반납한 시민·노동자 숫자는 늘어만 간다. 이제는 그 숫자가 1천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시민과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섰다고 평가할 만한 해였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활동은 괄목할 만하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으로 “더 이상 노동은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힘들어 지칠 만도 했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노동의 위기에 당당히 맞섰다. 무지막지한 정부에 맞서 양대 노총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해 공동법률지원단까지 꾸렸다. 이달 7일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총회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벌인 한상균 위원장 석방요구 피켓시위는 단결의 백미였다. 2016년 내내 노동자들이 보여 준 쉼없는 단결된 저항의 몸짓이 쌓인 결과 공고하게만 보였던 정부 정책의 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냉철한 분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현장은 변한 게 없지 않냐는 말이다. 난마처럼 얽힌 현안은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희망찬 흐름을 끊을 수 있는 급작스런 법원 판결도 나왔다.

지난 24일 법원은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와 주택도시보증지부가 성과연봉제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연봉 8천만원” 운운하며 종국적으로 “신속히 효력을 정지시켜야 할 보전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판결을 두고 사측과 정부가 “법원이 성과연봉제 확대 시행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인정했다”고 호도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좀 더 정의롭고 용감한 판단이 아니어서 아쉽긴 하지만 이번 판결은 성과연봉제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가처분 법원에서 다루기 어려운 사건이므로 본안에서 판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일 뿐이다. 오히려 법리적으로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는 보수규정 변경의 효력에 관해 다툴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사용자의 주장을 가볍게 배척한 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다.

2017년에도 노동자들이 할 일은 많다. 광장에서 회자되는 명예혁명을 완성시켜야 한다. 마침 내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되는 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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