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28일은 4년 전 사회보장정보원(옛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여성비정규 노동자들이 눈물 흘리며 해고된 날이다. “연대의 힘으로도 극복 안 되는 외로움”이 있다는 투쟁 5년차의 공공부문 여성비정규 해고노동자. 일자리와 복지가 평생 실천의제인 사회보장정보원분회장 봉혜경.

봉혜경은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린 해에 꿈많은 국문과 신입생이 됐지만 2학년 때 서울의 봄과 좌절을 현장에서 경험하게 된다. 군부 독재정권 끝장을 기대했지만 신군부의 등장이라는 현실적 좌절 속에서 국어선생님이 되기 위해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곧바로 결혼·출산을 하며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선택했다. 못다 이룬 그의 꿈은 1993년부터 국어와 논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이후 학습지교사 생활을 10년간 하면서 달랬다. 그의 삶을 지켜본 지인들은 어느 분야든지 타고난 성실성으로 인해 두각을 나타냈다고 증언한다. 이 시기 자신의 현실이었던 일자리 문제 이외에 복지 영역으로 관심이 증가하면서 관련 분야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1급, 요양보호사 1급, 심지어 간호 분야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자연스럽게 서울시 산하 한 구청의 사회복지과에서 1년여를 근무하다 사회보장정보원에 입사했다. 기혼여성으로서 일자리와 복지 문제가 고민이었던 만큼 큰 기대를 안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한다. 2010년 12월16일 사회보장정보원 통합상담센터 상담전담채용공고에 응시해 12월24일 합격통보를 받았다. 당시 인사담당자는 2011년 1월1일과 2일이 휴일인 관계로 1월3일부터 업무를 시작하지만 계약일은 1월1일이라고 했다. 입사동기 18명이 같은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형식적 절차로 여긴 계약서를 쓴 뒤 업무를 시작했다.

2012년 12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상담요원 140여명 중 일부 무기계약직을 제외한 전원에게 근로계약종료 통보서가 전달됐다. 팀장에게 통보서의 의미를 물었을 때 형식적인 요식행위라고 했다. 며칠 전 시스템 관련 교육도 받았기에 재계약을 위한 형식적 절차로 인식했다. 하지만 문제의 12월28일 이들은 12월31일부로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는 2년에 이틀이 모자라는 날 해고됐다. 연말연시에 세 차례 경영진 면담이 진행됐지만 1월3일부터 대화를 거부당했다. 4년에 걸친 긴 투쟁이 시작됐다.

이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4년간 몇 차례 고비를 겪었다. 복직투쟁에 나선 이들을 2013년 초 전해투 위원장으로 면담했던 기억이 새롭다. 쉽게 포기하지 말 것과 끝까지 투쟁해서 꼭 복직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봉혜경은 다른 해고자들이 자포자기하며 투쟁현장을 떠날 때에도 자신을 따라 직장을 옮긴 동생과 함께 명예회복을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팔순 노모를 모시는 50대 자매해고자는 이렇게 길거리에서 5년차를 맞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고민의제였던 일자리와 복지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결국 ‘노동’으로 관통하는 것임을 절감했다고 한다. 지난해 필자의 전해투 위원장 마지막 임기에 총무국장을 맡았던 것도 이러한 고민과 실천의 농축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함께 일하면서 노동 이외에 복지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된 것도 그의 덕이다. 필자의 활동 과정을 지켜보며 과로 문제에 대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잦은 ‘잔소리’를 덤으로 얹어 줬다. 감사하기 그지없다.

지난달 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봉혜경은 투쟁현장 동지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소식을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주례사를 대신한 양가 부모 축사에서 교사 부부에게 평소 지론에 입각한 직업적·사회적 책임의식을 강조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두 사람은 이미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 계층일 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취업준비생,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많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많은 비정규직들이 있습니다. 두 사람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사회적 모순 탓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을 뿐입니다. 이 노동자들도 같은 시대를 사는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책임이 두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하객들은 '해고자 어머니'의 따뜻하지만 무게 있는 격려에 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박근혜 당선과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커녕 어이없는 해고통보를 받고 투쟁에 나선 봉혜경. 자식의 결혼식장에서 당당하게 일자리와 복지문제에 대한 평소지론을 밝힌 해고자. 투쟁 5년차를 맞아 12월24일부터 분회장 역할을 시작한 봉혜경. 최근 박근혜 정권의 말로를 지켜보며 비정규직 문제와 부당해고에 맞서 포기 없는 투쟁을 하겠다는 봉혜경 분회장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반드시 승리하시길.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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