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수긍할 만한 그의 주장은 많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 미국이 취한 극단의 저금리를 포함한 양적완화 정책은 국제통화기금 사태 때 한국에 강요했던 고금리 정책과는 반대였다는 것, 주주행동주의가 미국에서 낳은 과도한 배당 등 약탈적 특성이 그렇다. 그럼에도 그의 논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곧 논리적으로는 "197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전문경영진의 전횡과 한국 재벌체제의 문제점은 동일하다"는 시각, 실천적으론 "주주행동주의를 본질로 하는 경제민주화는 정책의 영역에서 추방돼야 한다"의 시각에는 동의하기 매우 어렵다. 미국에서 연역해 경제민주화를 주주행동주의와 등치시키는 것은 경제민주화를 복지 강화 정도로 보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재벌체제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창업주 일가의 전횡으로 얼룩진 경제 독재, 경영자 독재다. 소유 경영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며 창업주 일가가 일삼아 온 뿌리 깊은 내부자 거래나 반노동 적대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2세·3세로 경영세습을 하더라도 계승과 단절이 있을 법도 한데, 나쁜 것과 단절하는 양태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벌 스탠더드’라고 할 법하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나 대기업집단의 재분류 필요성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일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재벌체제 안에서의 격심한 계층화는 최근의 특징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창업주 일가와 상당한 기간 부닥쳐 온 대기업 노동조합은 당근과 채찍 속에서 경제적 조합주의에 길들여진 채 안주하게 됐다. 이는 결국 노동계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고, 소득 주도 성장이 절실한 한국 경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퇴출 대상이기는커녕 한국 자본주의에 필요한 해법이다. "주식회사로서의 법인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주식회사는 물적이며 인적인 결합체다. 물적 결합이라는 의미는 체계적으로 결합한 자본, 인적이라는 의미는 경영자·종업원·주주를 비롯한 법인의 이해관계자들의 관계 결합을 일컬으며 나아가 주식회사 자체가 갖는 ‘법인격’까지 포함한다. 바로 여기가 주식회사에 대한 소유와 경영, 그리고 지배에 대한 복잡함이 나오는 지점이다.

주식회사가 단순히 물적 결합체라면 경영권은 주주들에게 전일적으로 귀속하는 게 맞다. 주주의 권리는 이익 배당, 잔여재산 청구, 의결권 행사(결국 경영권)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권리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다. 주주의 이익배당이나 잔여재산 청구권은 기업 재산에 대한 권리를 지닌 다른 모든 청구권자의 권리 행사 이후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에, 다른 모든 권리행사 이후에도 자신에게 몫이 돌아오게 하고, 이 돌아오는 몫을 키우는 데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에게 전체 재산을 통할하는 경영권(의결권 행사)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영권이 행사되는 기업의 전체 재산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종업원(노동자)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굳이 마르크스를 빌려 오지 않더라도, 종업원 각자가 자유의사에 따라 노동력을 일정한 시간 동안 판매하는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노동력은 인격체로서 노동력과 분리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정규직의 50%에 불과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는 비정규직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취업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를 떠올려 보기만 해도 이 딜레마의 근원성을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주주는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기업을 떠날 수 있는 반면, 종업원은 그렇지 못한 이해관계의 차이까지 있다. 흔히 말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단기 성과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반면 종업원은 직장으로서의 기업이 오랫동안 유지·존속하는 이해관계와 친화성을 갖는다. 주주가 주식회사를 통할하는 경영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고,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제기되는 이론적인 배경도 바로 이것이다. 시민이 주권자이면서 피치자로서 통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정치 민주주의와 달리, 경제 민주주의에서 이런 관계자가 자본(주주)과 종업원으로 좀 더 복잡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재벌들은 주주행동주의로 불리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주주가치 경영’은 옹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재벌 총수든, 그에게 고용된 전문경영인이든, 입버릇처럼 주주가치 경영을 내세워 왔다. 창업주 일가의 주주가치 경영은 중장기 전망이고, 주주행동주의는 단기성과에 치우친다는 식의 만리장성이 쌓여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기까지 하다.

창업주 일가의 유전학적 특성상 ‘기업가정신’이라는 DNA가 면면히 2세·3세에게 유전되는 게 아니라면, 창업주 일가의 경영세습을 체계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창업주 일가가 경영세습을 위해 홀대하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대주주 견제 차원에서라도 이뤄지는 게 맞다. 다만 이는 경제 민주주의의 한 면일 뿐이다. 문제는 창업주 일가 못지않게 기업의 중장기 생존에 이해관계를 갖는 종업원 목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은 지금까지처럼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산업민주주의’나 ‘사회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거론돼 온 경제 민주주의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경제 민주주의가 퇴출은커녕 더 풍부한 의미를 담아야 할 대상인 이유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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