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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품’ 민주주의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여전히 광장은 뜨겁다. 지난 토요일에 다시 광화문광장은 촛불의 바다였다. 세종로 정부청사 외벽에 ‘박근혜 구속, 조기 탄핵’이라 빛으로 새겼던 2016년 12월24일, 광화문에서 60만, 전국에서 모두 70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다고 보도됐다. 벌써 9번째, 이제 이 나라는 토요일이면 촛불이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헌법재판소는 조기 탄핵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요구는 명확했다. 다른 요구도 있었다. 촛불집회 주최자 퇴진행동은 ‘적폐 청산! 6대 긴급 현안’을 제기했다. 1.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2.방송장악방지법 개정, 언론부역자 청산 3.백남기 특검 실시 4.국정역사교과서 중단 5.성과연봉제 저성과자퇴출제 중단 6.사드배치 중단이었다. 이렇게 퇴진행동은 박근혜 처단에서 나아가 박근혜 정책의 폐기를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광장은 박근혜 퇴진을 위해서 수백만 촛불로 뜨겁게 행동해서 마침내 국회가 탄핵 소추토록 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대에 대통령 박근혜를 올려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헌법재판소에 대통령 박근혜를 신속히 탄핵 결정하라 외치고, 박근혜 정책의 폐기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행동이 계속돼서 그 요구를 관철하게 될 것인가. 분명히 이 나라의 광장은 여전히 촛불로 뜨겁다. 하지만 거기까지 계속해서 수백만으로 뜨겁게 타오를 것인가. 오늘 이 나라의 광장에서 국민의 행동에 달려 있다.

2. 광화문광장은 ‘박근혜 하야하라’로 열렸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서 백만의 대오로 청와대까지 ‘박근혜는 물러가라’고 외쳤다. 경찰 차벽을 넘어 대통령궁 청와대로 몰려가 끌어내겠다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외치고 외치고 외쳤을 뿐이다. 경찰 차벽을 넘는 일탈이라도 보이면 참석자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제지하는 행동을 했다. 촛불집회는 구호였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가투’가 아니라 박근혜에 퇴진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집회시위’였다. 사실 그건 국가권력에 대한 호소였을 뿐이다. 주권자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는 권력에 대해 국민의 말을 듣고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최고권력 대통령 박근혜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1960년 4·19 혁명의 거리에서는 진압경찰의 총탄에 맞서 쓰러지면서 독재자 대통령 이승만을 끌어내겠다고 ‘가투’를 전개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는 진압경찰의 진압봉과 최류탄에 맞서 불법시위를 전개했다. 직접 독재자를 끌어내겠다는 결의로서 행동했다. 그런데 오늘 촛불집회에서는 이런 가투, 불법시위는 없다. 호소할 뿐 권력을 끌어내는 직접 행동은 없다. 그러니 승리는 독재자의 도주나 항복선언이 아니라, 법에 따른 파면절차인 탄핵심판절차로 전개되고 있다. 국회의 탄핵 소추의결로 국민은 승리를 노래했다. 주권자로서의 직접 행동이 아니라 대표자 국회의원의 행위로 승리를 쟁취했다. 234개의 찬성표는 국민들이 12월3일 232만개의 촛불을 들고 국회의원들의 투표성향을 분석하며 탄핵에 찬성하도록 압박하고서 나왔다. 촛불집회는 철저히 집시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경찰서에 신고한 광장과 법원이 허용해 준 거리에서 집회와 행진을 해 왔다. 광장의 거대한 분노는 국회의 표결로 수렴됐다.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헌법의 광장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은 광장에서 국민의 분노는 국민의 대표 국회의원의 표결로 실현된다는 것이라고 해설되는 촛불집회였다. 누군가는 광장에서 국민의 행동으로 직접 최고권력자 대통령을 심판하고 있다고 말하고, 광장 민주주의라며 주권자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거창하게 해설하고 있지만 오늘 촛불집회는 철저히 대의주의로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이 정해 놓은 민주주의로 국민의 의사는 수렴돼 전개되고 있다. 26일 한겨레신문 1면에서 ‘민주주의는 기성품이 아니’라고 오늘 촛불광장의 민주주의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장의 새로운 민주주의, 주권자 국민의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는 이 나라의 기성품 민주주의로 전개되고 있다고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한다. 촛불집회는 이 나라에서 기성품의 대의민주주의가 주권자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도록 대표의 표결을 감시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고, 그것으로 승리를 노래했다. 저 4·19혁명과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분노했던 국민의 행동 보다는 오늘 촛불은 그 분노의 규모는 분명 거대했지만 소심했다. 주권자로서 거리낌 없는 행동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법을 초월하고 낡은 헌법질서까지도 폐기하는 무법자로서 주권자로서 국민의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대통령에게 퇴진하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속하게 탄핵 결정해 달라고 호소하는 국민이고, 박근혜 정책을 폐기하라고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에 요구하는 국민이었다. 지금까지 촛불집회는 그랬다. 그런데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 박근혜 정책의 폐기, 나아가 장차 노동자권리를 위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까지 기성품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3. 촛불은 행동이었다. 그것은 대의주의, 기성품의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국민의 행동이었다. 아무리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폭로됐다 해도 오늘 이 나라에선 촛불의 퇴진행동이 없었다면 박근혜 퇴진을 위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촛불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전히 대의주의, 기성품의 민주주의 내에서 전개돼 온 촛불의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주권자 국민의 행동이었다. 그것이 기성품의 민주주의 내에서 전개됐던 것이지만 국민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것이었다. 행동이 민주주의다. 국민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다. 그것이 비록 대의주의로 수렴되는 것일지라도 국민의 행동은 결코 무엇으로도 수렴될 수 없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것이 직접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닐지라도 국민의 행동이야말로 어떤 민주적 국가권력의 행위보다 민주주의다. 오늘 촛불의 바다를 두고서 국가 위기니, 국정 혼란이니 하는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권력자의 말일 뿐이다. 광장에서 국민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이니 오늘 100만의 촛불집회야말로 민주주의의 위대한 실현인 것이다. 민주주의로 보자면 오늘은 대한민국의 위기나 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날이다. 그저 국민의 행동이 곧바로 국가의 의사로 결정되고 국가의 일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걸 가로막고 서있는 대리주의 권력장치가 국민의 의사를 제멋대로 재단하고서 행동하는 것이 불만일 뿐이다. 이렇게 오늘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행동은 기성품 민주주의가 거추장스럽고 불만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미 심판대에 오른 박근혜 탄핵을 넘어 박근혜 정책의 폐기, 나아가 장차 노동자권리를 위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국회와 행정부 등 수많은 권력의 일로 행해지게 된다. 대리주의가 국민의 의사를 갈음하고서 전개된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정책에 관해서도,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분노처럼 하나의 대오로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서 수립하고 폐기하라고 권력을 압박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4. 국민이 직접 결정하든 대표자가 대신 결정하든,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의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돼야 한다. 국민이 직접 행동해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한다면 당연히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것을 행한다면 대표자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제대로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실패는 대표의 실패였다. 인간의 역사는 대표를 사칭한 권력의 인민에 대한 배신의 역사였다. 주권자 국민을 배신한 대표의 행위가 민주주의의 실패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두고서, 인민과 대표 권력의 관계를 두고서 고민해 왔다. 단순히 국가의 일에서만은 아니었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성원과 대표의 관계가 문제돼 왔다. 민주주의는 국가 대한민국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단체에서 실현하는 데 국가 권력에 대한 민주주의투쟁에서만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일로 바로 보았다.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의 행동이 위대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에서 노동자의 행동도 그렇다. 국가부문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라서 얼마든지 조합원, 노동자의 의사를 수렴해서 노동조합, 노동자단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데도 대의원, 임원 등 노조간부가 대의원회, 중앙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 등에서 결정하고 집행하고 만다. 불과 몇백 명, 몇천 명의 노동조합에서도 이렇게 운영돼 왔으니 선거 때 투표하는 것이 조합원의 일이고 조합활동은 대의원, 간부의 일이다. 기껏해야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위해 활동하느냐 아니냐를 두고서 어용이냐 민주냐로 나뉠 뿐이다. 기성품의 민주주의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일을 두고서는 광장에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를 외쳐 행동하지만 노동조합, 노동자단체에서 직접 행동하는 민주주의는 찾기 어렵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요구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 등 노동자운동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의사가 즉시적으로 노동자단체 자신의 의사가 될 수 있어야 노동운동은 노동자 자신의 운동이 될 수 있다. 광장에서 현장에서 자유로이 노동자권리와 노동자단체의 활동에 관해서 주장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노동자의 민주주의다. 기성품의 민주주의가 거추장스럽고 불만일 정도로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노동운동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이 나라 광장은 노동자의 행동으로 더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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