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노동 체제’의 한계는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충분히 보장·실현되지 못한 데 있다. 3권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 권리인 단결권, 즉 결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가 너무 많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거나 못한 노동자 비율이 90%다. 입법부의 반노동 입법, 행정부의 반노동 정책, 사법부의 반노동 판결이 가장 큰 이유다. 노동기본권을 깔아뭉개는 사용자의 전투성(militancy)도 큰 문제다. 덧붙여 노동조합운동 자체의 부족함, 특히 자기만족적인(complacent) 전략과 전술도 지적돼야 한다.

노동자 권리와 이익의 헌장인 단체협약에서조차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 가입 범위 조항이 그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 노동조합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수치스러운 조항을 없애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조직적으로 이 문제는 기업별노조주의의 청산과 산업별노조 건설과 연결된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기존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새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가 충분히 실현될 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업장 밖으로의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가 유명무실한 우리나라에서 (기업별 단체협약의 사업장 내 구속력을 고려하더라도)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많이 잡아야 12%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더라도 단체협약을 짓밟는 사용자가 적지 않음을 고려하면, 단체협약 적용률은 노조 조직률 10%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단체협약 적용률 제고는 노조 조직률 제고와 동전의 양면이다.

단체협약의 양도 문제지만, 질도 문제다. 질의 문제는 단체교섭 대상·수준과 관련돼 있다. 이익 관련 사안은 교섭 대상이 되는데, 권리 관련 사안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다. 특히 노동조합을 통해 구현되는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collective rights)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의 합작 공세가 거세다. 단체교섭의 역사성, 즉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고 이익을 개선하기 위한 평화적 수단으로서 단체협약의 철학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널리 퍼져 있다.

기업별노조주의를 뛰어넘은 산업 수준의 교섭은 원천봉쇄당하고 있다. 산업 수준의 단체교섭을 가로막는 법률은 폐지해야 한다. 하지만 법률만능주의(law is everything) 접근법은 주의해야 한다. ‘산별교섭의 법제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노동조합 형태가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듯, 단체교섭 형태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있으나 마나 근로기준법'처럼 주체의 힘이 없다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으로 무엇을 정해 놓으나 유명무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종국적인 수혜자는 노동자가 아닌 소송 수임료로 먹고사는 법률가가 될 것이다. 단체교섭의 수준은 본질적으로 법률적 문제가 아닌 힘 관계의 문제다.

갈기갈기 찢겨 걸레가 돼 버린 단체행동권을 회복해야 한다. 헌법에도 없는 직장폐쇄권이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과 대등한 지위로 격상돼 무차별적으로 행사되고 있다. 파업 현장에서 대체근로가 빈발하고, 특히 공공부문 단체행동권은 '필수유지업무'라는 반헌법적 제도로 인해 사실상 부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파업 절차와 진행에서 국가와 자본의 부당한 개입과 방해가 폭넓게 허용되고 있다. 단체행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면 단체교섭권이 제대로 설 수 없다. 노동 3권은 서로 유기적으로 교차하면서 꼭짓점을 이루며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이라는 삼각형을 지탱하고 있다.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삼각형 자체가 바로 설 수 없다.

2017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흘렀다. ‘87년 노동 체제’의 결정적 결함은 1987년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하위 법률에서 부정되면서 훼손·변질·왜곡된 데 있다. 21세기 최대의 격변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7년 새해는 노동 3권 회복을 통해 인간해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시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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