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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한 그릇을 비우며

올해도 어김없이 팥죽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시고, 형제들에게 나눠 주는 의식을 한 해도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팥죽은 큰 냄비에 끓이면서 오랫동안 저어 줘야 본래의 맛이 살아납니다. 그만큼 팥죽을 쑤는 것은 ‘고약한 노동’입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인가요. 동짓날만 되면 팥죽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어머니의 따스한 정이 듬뿍 담긴 음식이니까요.

병신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풀지 못한 의혹들, 매듭짓지 못한 결정들이 널린 탓에 올해 세밑은 여느 때와 달리 어수선합니다. 차분히 한 해를 성찰하는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팥죽을 한 술 뜨니 그제서야 병신년 끄트머리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올 한 해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되돌아보면 올해처럼 역동적인 해는 없었습니다. 구조조정과 총선 그리고 탄핵이라는 세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구조조정은 올해 화두였습니다. 저성장과 침체의 어두운 터널에 진입한 한국경제는 또다시 구조조정 회오리에 휩싸였습니다. 조선·해운업에서 가장 먼저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조선업의 경우 정치권에서 앞다퉈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정책 경쟁을 벌였습니다. 수주절벽에 선 조선업을 위한 일감 늘리기와 고용조정·지원대책을 얼개로 짠 대책이었죠. 물론 정부 내에 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에겐 고용지원대책이 실효성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습니다.

우려로 끝났어야 했는데 그만 현실로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정부 대책은 뒷북으로 그쳤고, 고용안정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와중에 대형 조선사들은 분사화를 통한 몸집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숙련인력을 유지하면서 경기변화에 대비하는 신중한 대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내년에는 고강도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는데 이런 오류들이 되풀이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조선·해운업의 사정을 좀 더 면밀히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4·13 총선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민심은 총선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심판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는 그 결과입니다. 박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평소 즐겨 본 막장드라마 정도로 여긴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은 총선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작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국정농단 드라마의 주인공이 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습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을 심판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잡으려는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였습니다. 국회는 이런 민심을 받들어 박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것입니다. 국민이 두 번에 걸쳐 박 대통령을 심판한 셈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부패 게이트와 국정농단 행태를 잡아떼는 데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지만 그저 바라만 봐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국민이 새 나라 새 정치 만들기에 직접 나서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국민은 촛불로 그 결기를 곧추세우고 있습니다. 어느새 전국으로 퍼진 촛불은 봉화가 돼 국민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자신을 불살라 빛을 토해 내는 촛불은 캄캄한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새 팥죽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병신년을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사·정 독자 여러분!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유년에도 <매일노동뉴스>는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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