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광고는 내게 문구 취지와 배치되는 몇 가지 교훈을 줬다. 1등만을 강요하는 배타적인 세계는 결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고, 그 누구라도 모든 면에서 1등일 수는 없으므로 단 하나의 1등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며, 반드시 1등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또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에 성과연봉제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 다른 영역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두 부문에 이러한 현상이 집중되는 것은 아마도 정부 입장이 관철되기 쉬운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부문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금융부문 또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지도와 규제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분야다. 정부는 성과연봉제의 전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에 ‘선도적’ 역할을 부여해 목표 달성을 위해 진력했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특징은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공공기관이 개별적인 성과에 목을 매면 공공기관이 담지해야 할 공공성은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당한 노동자에게 많은 보험금을 지급했다면, 산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준수하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할 일이지 이를 이유로 공단이나 당해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공단이 일반적인 사기업처럼 효율성을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산재 제도 자체가 붕괴될 것이다.

금융기관 신입사원이 교육장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 표현 중 하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다. 그런데 금융기관에서 소속 노동자들로 하여금 특정 시점에 특정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성과의 주요한 부분으로 평가하는 관행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관행은 흔히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데, 금융기관 노동자 입장에서 캠페인을 따르지 않은 채 저성과자 대열을 이탈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 문제는 캠페인 대상 금융상품이 언제나 모든 고객의 이해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중남미 국채가 그러했고, 중국 펀드가 그러했으며, CMA가 그러하고, ISA가 그러하다. 개별 금융상품이 특정한 고객에게는 유리할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고객들도 무수한데, 적어도 저성과자 늪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금융기관 노동자는 이를 가리지 않고 고객들에게 캠페인 대상 금융상품을 일단 권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관행이 과연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는다면, 이에 쉽게 수긍할 금융기관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공공·금융기관의 성과평가 대상과 방법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은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는 고사하고 충분한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했다. 이제 그 시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가까이는 법원이 이러한 현실에 제동을 걸어 주기를 기대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성과만능주의의 불합리성과 비인간성이 올곧게 논의돼야 한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데도 이를 모르는 체하며 1등을 향해 달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규정이 단순한 장식(裝飾)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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