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연말이 연말 같지 않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지만, 세상은 온통 정리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텔레비전을 통해 “모르겠습니다” 혹은 “아닙니다”는 말만 질리도록 듣고 있는 시민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경기보다 답답하고 우울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의 일곱 시간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모든 수색과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맘때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자성어가 송구영신이다. 오래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자는 얘기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의 저서 <옥중수고>에서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 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에 온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여덟 번의 촛불을 통해 광장은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그람시가 이야기한 위기는 시민의 것이 아니다. 단지 사라져야 할 낡고 오래된 것들이 시대를 읽지 못하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없어져야 할 옛것들을 우리는 적폐라고 부른다. 지난 17일 촛불 광장은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외쳤다. 노동행정에도 낡은 것이 있다. 헌법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단체교섭권 행사의 결과인 단체협약은 노사자치주의 원칙에 따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정한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시비를 걸고 나섰다. 그들이 든 칼은 1980년 신군부 세력이 노동조합 통제를 위해 만든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다. 행태도 낡았고 손에 든 무기는 더욱 그러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21일 한국노총과 금속노련·화학노련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을 항의방문했다. 노동부는 대구·경북지역 지방노동위원회에 현재까지 가장 많은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했다.

자리에 참석한 한 사업장 위원장이 포항지청장에게 물었다. “그동안 우리 노조와 회사, 정부가 크게 갈등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지청장은 “없었다”고 했다. “지금 이 건 때문에 노사가, 그리고 노정이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지청장은 “안타깝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청장은 끝내 “신청을 취하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 이유는 “본부의 지시 때문”이라고 했다. 평화롭던 노사관계가 노동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깨지는 것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는 그 공무원의 선택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고객이 아니라 본사의 지침이었다.

하기야 탄핵받은 정권의 권한대행 역할을 마치 천부적인 것인 양 즐기고 있는 황교안씨와 재벌특혜의 첨병 역할을 했던 이기권씨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공직사회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다만 우리는 이 연말과 연시에 옛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며, 어제가 아닌 내일을 그리고 싶다.

“참 힘들었죠. 올해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도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우리 모두 알고 있죠. 하나하나 다시 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곧 해피 뉴이어. 괜찮은 얘길 해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날들.”(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 중에서)

노래 가사처럼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는 시민들이 따듯한 크리스마스와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니 낡고 오래된 것들이여, 병신년과 함께 멀리멀리 가 버려라. 제발.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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