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박근혜 정권이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마자, 토요일과 퇴근 이후 시간을 거리에 반납하다시피 한 시민의 힘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으리라는 점을 모두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리의 분노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 단지 부도덕하고 무능한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처벌만이 아니라 그들이 국가를 사유화하면서 국민에게 강요한 적폐의 청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그런데 탄핵이 가결되자마자 그동안 국민의 함성에 숨죽이고 있던 구체제가 조금씩 반격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하다. “이제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헌법재판소에 맡겨라”고 말이다. 경제가 위태로우니 재벌 총수들과 박근혜 정권의 경제 수장들이 이제 그만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놓아줘야 한다는 주장도 소리를 높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청사 앞 집회를 제한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린다.

역사가 말하듯이 헌법은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이다. 권력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짓밟을 수 없다는 시민의 저항이 쟁취한 결과물이다.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정치 공동체의 목적은 시민들의 인권 증진에 있다는 ‘합의’를 명시한 ‘권리헌장’이다. 그리고 이 합의가 부정될 때 시민이 그것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아로새긴 헌장이기도 하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왜곡되기는 했어도 우리 헌법 역시 그렇게 태동했다. 착취와 식민 수탈에 맞서 저항했던 인민들이 해방 이후 건설하고자 했던 나라의 지향이 제헌헌법에 담겼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함께 사기업에 대한 ‘이익 균점(均霑)권’을 노동기본권으로 천명했던 제헌헌법 제18조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를 끝장 낸 4·19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라 할 수 있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헌법상 기본권을 노동법을 통해, 그리고 유신을 통해 무력화시켰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빼앗고,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행사를 철저히 억압하고 처벌하는 노동법을 만들었다. 지금의 노동조합법이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를 처벌하는 노동형법으로 기능하는 데에 역사적 연원을 형성했다.

지금의 노동법 틀을 만든 1997년 이후 노동법 개정 과정은 노동의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해고의 자유 확대와 노동 3권의 축소 과정이었다. 노동법의 대원칙인 해고제한 원칙을 판결로서 무너뜨려 온 정리해고의 정당성 확대, 기간제 근로계약을 통한 해고의 자유를 추인해 온 판례들, 헌법적 근거도 없는 ‘경영권’을 신성화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을 유린해 온 대법원, 노동기본권에 반하는 이런 위헌적 법령들에 일관되게 ‘합헌’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오늘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노동운동이 할 일은 박정희-박근혜 체제의 청산을 헌법재판소 결정에 맡겨 두고 구체제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구체제가 질식시킨 노동기본권을 복원시키는 것, 그중에서도 노조할 권리에 대한 모든 제한을 없애고 노동 3권 행사를 민사소송으로, 형법으로 처벌하는 노동형법의 잔재를 걷어 내는 것을 우선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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